[중남미는 지금] 반복되는 페루 대통령 낙마의 이면

입력 2022-12-14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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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의 페드로 카스티요 대통령이 지난 7일 탄핵당했다. 의회에서 발의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국회의원 130명 중 3분의 2가 넘는 101명이 찬성한 결과다. 카스티요가 작년 7월 대통령으로 취임하였으니, 임기를 1년 6개월도 채 채우지 못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게 된 셈이다. 그는 이에 앞서 이미 두 차례나 탄핵 위기를 넘긴 바 있지만, 이번 탄핵소추안 표결의 결과는 가결이었다.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탄핵은 어느 정도 예견된 것이었다. 농촌 지역 초등학교 교사 출신인 그는 2017년 교원노조 총파업을 이끌며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고, 작년 급진좌파 정당인 자유페루당의 대통령 후보로 대선에 나섰다. 그는 신자유주의 노선 탈피, 국가의 경제 부문 개입 강화, 부패 청산, 개헌 등을 공약하였고, 빈곤 해결 및 분배지표 개선에 대한 기대와 기성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은 카스티요의 대통령 당선이라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비 도시 지역의 저소득층, 차상위층, 원주민 유권자의 지지가 특히 강했다.

하지만 선거에서 이기는 것과 정부를 꾸려 통치 행위를 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였다. 카스티요는 대선에서 페루의 극심한 정치 파편화의 덕을 봤지만, 이는 집권을 시작하자 장애물로 돌아왔다. 대선 1차 투표에서 18.9%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총 130석 중 37석에 불과한 의회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을 등에 업은 선출직 경험이 전혀 없는 정치신인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것은 애초에 많지 않았다.

정부 출범 이후 카스티요 전 대통령은 야권 세력과의 출구 없는 대립을 반복했다. 여야 갈등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내각 교체가 빈번하게 이루어지며 정부는 제 기능을 잃었고, 직권 남용, 뇌물수수 등의 혐의로 대통령과 그의 측근에 대한 검찰 조사가 이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0년대부터 줄곧 건실하게 이루어져 왔던 경제성장도 코로나19의 여파와 최근 시행되고 있는 긴축으로 부진하기 시작했다. 월별 소비자물가상승률이 9%에 가까워지는 등 물가상승 압력이 가중되자 페루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가파르게 올렸고, 기준금리는 최근 7.5%까지 치솟았다.

2022년 시행된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 여부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이 30%를 넘어간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집권당의 힘이 약하고, 대통령과 그의 측근이 부패 혐의에 연루되고, 경제 침체가 본격화되고 있으며, 국정 지지율까지 낮은 정치신인 대통령이 기성 정치 세력이 장악하고 있는 의회의 먹잇감이 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여러모로 불리한 조건에 직면해 있던 카스티요 전 대통령에 대한 의회의 세 번째 탄핵 시도가 있자, 카스티요는 무리수를 두고야 말았다. 탄핵 시도에 맞서 입법부 해산과 사법부 수뇌부의 교체를 단행하고, 비상 정부를 수립하는 등 일련의 조치를 단행한다는 나름의 승부수를 던진 것이다.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이 1992년 의회를 강제 해산한 친위 쿠데타를 연상시키는 조치였다.

의회 구성원 대부분은 카스티요 전 대통령의 조치를 반헌법적인 것으로 받아들였고, 정부 각료들마저 그의 계획을 친위 쿠데타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의 행태가 반헌법적이라는 정치권의 의견이 모이자, 앞서 두 번 부결됐던 탄핵소추안이 이번에는 의회의 문턱을 넘었다. 페루는 카스티요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도 4년간 대통령이 세 번 탄핵 당하거나 탄핵 위기 속 사퇴한 바 있다. 카스티요의 탄핵으로 지난 5년여간 정부의 수장이 네 번 바뀐 셈이다.

페루에서 대통령의 중도 낙마가 반복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의회가 객관적인 탄핵 사유 없이도 곧바로 대통령 직무 정지를 결정할 수 있는 간소한 탄핵 절차가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이는 대통령의 정치적 책임에 대한 객관적인 근거나 대통령의 잘못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부재한 상황에서도, 대통령 탄핵소추권과 심판권이 모두 집중된 의회의 정치적 결정으로 행정부 권력의 수장이 교체될 수 있음을 뜻한다.

2018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 전 대통령이 사임하자 대통령직을 승계한 마르틴 비스카라는 강력한 반부패 정책 시행과 안정적인 국정 운영을 통해 높은 지지율을 구가했으나, 여소야대 국면에서 부패 척결 정책을 둘러싼 의회와의 갈등으로 맥없이 탄핵당했다. 탄핵 국면이던 2020년 10월 진행된 여론조사에서 비스카라에 대한 지지율이 78%에 달했음은 탄핵이 일반적 여론에 반하여도 얼마든지 이루어질 수 있음을 여실히 보여준다. 대통령직을 유지하는데 국민의 지지보다 중요한 것이 여당의 힘과 의회와의 관계인 것이다. 반복되는 대통령 낙마의 이유를 대통령의 무능과 실책에서만 찾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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