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롯데는 지난달 롯데칠성음료 주식을 전량 매각해 380억 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했다. 한화솔루션은 한화첨단소재와 에이치에이엠홀딩스 등 자회사 2곳의 지분 일부를 6800억 원에 매각했다. 대우조선해양건설은 보유 중인 160억 원 규모의 전환사채(CB)를 매각해 현금 유동성을 확보했다. 현대백화점은 선제적 유동성 확보 차원에서 렌탈사업 일부를 매각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가 곳간에 현금을 쌓고 있다. 경제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미래 성장엔진에 투자할 ‘실탄’을 확보하는 차원으로 볼 수 있다. 자산 증가 사유는 달러자산 가치 상승, 투자 유치와 사업 구조조정, 재고조정 등 다양했다. 다만 쌓아두기만 할 뿐, 실제 인수합병(M&A)이나 미래 먹거리에 대한 투자로 이어지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11일 본지가 올해 3분기 보고서를 분석한 결과, 매출 상위 10대 기업(금융사 및 공기업 제외)이 올해 들어 9월 말까지 늘린 현금 및 현금성 자산(단기금융상품 포함, 연결재무제표 기준)은 32조4100억 원이다. 총자산은 작년 말보다 15.8% 늘어난 237조3000억 원이다. 이들 기업의 현금성 자산은 3분기(7~9월)에만 9조 원 이상 늘었다.
재계 1위인 삼성전자가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았다. 삼성전자의 3분기 말 현금성 자산은 128조1600억 원으로, 작년 말 대비 7조4200억 원, 6월 말 대비로는 4조1500억 원 늘었다. 10대 기업 중 작년 말 대비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이 늘었다.
매출 2위인 현대차의 현금성 자산은 작년 말보다 6조3600억 원 늘어난 26조1000억 원이었다. 현대차는 2020년부터 2년 연속 2조 원 이상을 현대차증권이 발행한 MMT(Money Market Trust)에 투자하며 유동성을 늘려가고 있다. 올해는 1조5800억 원을 투자했다. 같은 기간 기아는 2조6200억 원 늘어 18조6900억 원을 기록했다. 현대기아차의 현금성 자산은 44조79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삼성전자와 현대차에 이어 SK는 22조4500억 원의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작년 말보다 4조 원가량 늘어난 규모다.
이밖에 POSCO홀딩스(7조5000억 원), LG전자(7조5700억 원), SK이노베이션(9조3000억 원), 한화(5조3300억 원), HD현대(7조2900억 원), LG화학(4조9100억 원) 등의 기업이 10조 원을 밑도는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부동산 등 자산을 팔아 유동성 확보에 나선 곳도 있다.
한화그룹 자동화설비 계열사인 에스아이티는 10월 서울 종로 소격동 일대 빌딩 네 채를 250억 원에 매각하기로 했다. 한진칼의 종속회사인 칼호텔네트워크는 제주KAL호텔을 950억 원에 처분했고, 대한항공은 서울 종로 송현동 필지를 5579억 원에 매각했다. 만도와 SK텔레시스는 각각 4000억 원, 820억 원에 판교연구소를 팔았고, LX하우시스는 자산효율화 차원에서 울산 토지·건물을 매각했다.
경기침체는 점점 다가오는데, 국내 기업의 직접금융 자금 조달시장은 냉랭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10월 주식·회사채와 전환사채(CP)·단기사채는 발행실적 모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회사채(8조2982억 원)는 전월 대비 49% 감소했고, 주식발행(4875억 원) 규모는 36.1% 줄었다. CP 및 단기사채 발행실적은 총 112조9208억 원으로 전월 대비 8.8% 감소했다.
한편, 기업의 현금 확대를 두고 우려하는 시선도 있다. 자금이 M&A나 시설투자, 연구·개발(R&D) 등의 생산적인 곳에 쓰이지 않고 곳간에 묶여 있으면 아무런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내년 경제성장률은 2.2%로 올해에 비해 성장세 둔화가 나타날 전망”이라며 “2023년에도 국내 경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글로벌 경기 둔화, 국내외 통화긴축, 환율 및 물가 불안 등과 같은 리스크 요인들이 상존한 가운데 성장세 둔화를 경험할 것으로 전망됨에 따라 시의적절하고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