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들의 유동성 위기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수준으로 보인다. 대형 보험사에 해당하는 NH농협생명도 500억 원 수준의 환매조건부채권(RP)을 매도했다.
RP는 금융사가 일정 기간 후 확정금리를 보태 되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짧게는 1일 길게는 3개월간의 기간을 두고 발행되는 초단기 자본조달 수단이다.
6일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농협생명은 지난 2일 500억 원 규모의 RP를 매도했다. 농협생명 관계자는 "단기 유동성 해결을 위해 RP매도 시스템을 구축했다"며 "오는 8일 정상상환이 된다면 시스템이 안정화됐다고 판단해 자금상황에 맞춰 필요시 추가로 매도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농협생명이 발행한 RP는 증권사에서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의 유동성 위기 완화를 위해 RP매도를 허용해줬다. 현행 보험업법에서 보험사 차입은 ‘재무건전성 기준 충족’과 ‘유동성 유지’를 위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자금이탈 방지를 위한 RP매도가 ‘유동성 유지’에 해당한다는 입장을 명확히 밝힌 데 이어, 이런 법령해석을 담은 문서를 생보업계와 손보업계에 전달했다.
앞서 농협생명은 5% 후반대 확정금리형 일시납 저축성보험을 출시하려다 철회했다. 유동성 위기를 저축성보험 판매를 통한 현금 확보로 버텨보려 한 것이다. 하지만 역마진 리스크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 돌연 발을 뺐다. 금리 경쟁을 자제하라는 금융당국의 압박이 주효했던 것으로 보인다.
금감원 관계자는 "RP매도는 저축성보험 판매보다 단기자금 조달 측면에서 나은 방안"이라며 "다른 보험사들도 관심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RP는 단기채권이기 때문에 장기채권에 속하는 신종자본증권보다 금리가 낮다.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이번 정부의 규제 완화로 장기채권을 팔지 않고도 더 적은 금리로 단기성 자금을 마련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보험사들의 유동성 위기는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알려진다. 국내 신용평가사들은 국내 보험사 34곳을 대상으로 유동성 점검에 돌입하기도 했다.
보험업계 한 관계자는 "각사별로 매일 생명ㆍ손해보험협회에 유동성 비율과 자금조달 계획을 보고하며 살피고 있다"며 "어느 정도의 자금이 움직일지는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이달 안에 보험업계에서 조 단위 자금이 빠져나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