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현황 파악의 해였다면, 2022년은 핵심품목별 대응 조치들이 취해진 해였다고 할 수 있다. 특히 2021년 검토했던 4가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국내 산업역량 강화를 위한 산업정책과 국제협력을 위한 협력체 구축이 실행되었다. 반도체 분야는 ‘반도체 및 과학법(CHIPS and Science Act)과 팹4(FAB4) 협의체’, 배터리 및 희소금속 분야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nflation Reduction Act)과 핵심광물안보 파트너십(MSP)’, 의약품과 관련해서는 ‘바이오 행정명령(EO 14081)’이 모두 2022년 하반기 발효되거나 구축되었다. 2023년에는 기능에 초점을 맞춘 제도와 정책을 정비 강화하며 글로벌 경제안보 환경을 주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우선 2022년 9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은 인바운드 외국인투자심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미국은 이미 2018년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외국인투자심사 권한을 강화하며 경제안보상 중요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을 방어해왔다. 이번 행정명령은 중국과 같은 우려 국가의 기업이 미국기업에 대한 M&A 시도를 막는 범위를 더욱 확대했다는 데 의의가 있다. 특히 기존의 ‘기술, 인프라, 데이터(TID Business)’ 관련성에 더해 ‘공급망상의 위험성’을 외국인투자심사의 새로운 기준으로 추가했다. 또한 제3국 기업이더라도 미국이 정의한 우려 국가와의 관계성을 기준으로 미국기업에 대한 M&A가 불허될 수 있음을 밝혔다. 상당히 자의적이고 포괄적인 적용이 가능한 이 규정은 향후 수출통제와 같은 다른 조치들과 연계하여 대중국 견제 스크럼을 짜는 데 활용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향후 미국은 아웃바운드 투자에 대한 통제를 위해 새로운 심사제도 도입에도 나설 전망이다. 목적은 미국의 자금과 직접투자가 중국의 전략산업 육성에 활용되는 것을 막겠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법제도화하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논의는 이미 2018년도 수출통제개혁법(ECRA) 제정 단계에서부터 시작되었으며, 2022년 2월 하원에서 통과된 미국경쟁법의 일부로 포함된 국가핵심역량방어법안(NCCDA: National Critical Capabilities Defense Act)에서 확인된다. 최근까지도 제3국 기업에까지 역외적용이 가능한지에 대한 지속적인 검토가 이뤄지고 있으며, 2023년에는 행정명령의 형태로 새로운 아웃바운드 투자심사 기구 및 제도 구축에 나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은 새로운 국제 수출통제 메커니즘의 도입도 준비하고 있다. 과거 미소 냉전의 붕괴와 세계화의 진전이 코콤(COCOM)의 해체와 바세나르 체제(Wassenaar Arrangement)의 탄생으로 이어진 것과 같이, 현재 미중 전략 경쟁의 첨예화는 수출통제 패러다임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그 배경에는 더 이상 중국, 러시아 등 권위주의 국가들이 포함된 기존의 국제기구가 근본적으로 원활히 작동할 수 없다는 시각이 자리 잡고 있다. 따라서 향후 마음이 통하는 국가들과 함께 현재의 안보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새로운 수출통제 국제체제를 구축할 가능성이 크다. 2022년 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러시아에 대해 미국에 준하는 독자적 수출통제를 선언하며 미국의 해외직접제품규칙(FDPR: Foreign Direct Product Rule)의 예외를 인정받았던 우리나라를 포함한 30여 개 국가들이 창립 멤버로 워싱턴에서 거론되고 있다.
국제 통상 질서의 패러다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더 이상 ‘자유’ 무역이 아닌 ‘신뢰와 가치’에 기반한 무역안보의 시대로 돌입하고 있는 것이다. 2021년 11월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구상 단계 초기에 포함되었던 “자유로운 국경 간 데이터 이동(free flow of cross-border data)”이란 문구가 2022년 9월 각국 장관이 합의한 버전에서 “신뢰할 수 있고 안전한 국경 간 이동(trusted and secure cross-border data flows)”으로 바뀌었다는 점은 이러한 변화를 단적으로 상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