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ㆍ대만 등도 반도체 공급망 강화 가속
정족수 미달 ‘K-칩스법’…국회 통과 불투명
韓 기업들, 혜택 주는 해외로 갈 수도 있어
반도체 패권을 둘러싼 총성 없는 전쟁이 지속하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대만 등이 자국 내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지원책을 쏟아내고 있다.
반면 우리 국회에서는 지난 8월 발의된 ‘K-칩스법(반도체특별법)’이 3개월 이상 진전되지 못하고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뿐 아니라 국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 또한 약화할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세계 주요 국가들이 자국 내 글로벌 반도체 기업 유치, 자국 반도체 기업을 살리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다. 특히 파격적 세제 혜택, 대규모 투자 등으로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중이다. 우리나라와는 대조되는 모습이다.
김용석 성균관대 전자전기공학부 교수는 “기업들은 투자 환경이 더 좋은 쪽으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며 “국내 반도체 지원법이 계속해서 늦어지면서 국내 기업들이 해외로 나가거나 인재가 유출되는 등의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국은 ‘반도체 지원법’(Chips and Science Act)을 통해 미국 내 반도체 생산시설 확대에 총 520억 달러(약 70조 원)의 보조금 지급하기로 했다. 또 반도체 관련 투자 기업에 25%의 투자세를 공제한다.
유럽연합(EU)도 반도체 공급망 강화에 팔을 걷어붙였다. 유럽은 ‘반도체 지원 법안’(European Chips Act)을 통해 총 430억 유로(약 59조 원) 투자한다. 2030년까지 유럽 내 반도체 생산량을 전 세계 총 생산량의 20%까지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대만 역시 ‘산업혁신법 개정안’을 발의하며 자국에 본사를 둔 반도체 기업의 연구개발과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비율을 기존 15%에서 25%로 인상하기로 했다. 일본도 최근 총 1조3000억 엔(약 13조원) 규모 반도체 관련 예산을 확보하고 도요타, 소니, 키옥시아 등이 공동 설립한 라피더스에 700억 엔(약 7000억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국내에서도 8월 이런 흐름에 맞춰 양향자 의원을 중심으로 ‘K-칩스법’(국가첨단전략산업ㆍ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나왔다. 특화단지 인ㆍ허가 절차 간소화, 수도권 대학 반도체학과 증원 허용을 비롯한 세제 혜택(대기업 20%ㆍ중견기업 25%ㆍ중소기업 30%)의 내용이 담겼다.
김한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반도체특별법을 내놓으며 맞불을 놨다. 양향자 의원안과 거의 동일하지만 세액 공제 비율은 현행과 유사한 수준으로 낮췄다. 대기업은 10%, 중견기업은 15%로 명시하고 있다.
지난 29일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산업통상자원특허소위원회(이하 소위)가 시작되며 K-칩스법 시행을 위한 합의점에 물꼬를 틀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정족수 미달로 의결하지 못하면서 국회 통과가 또다시 불투명해졌다. 전문가들은 K-칩스법의 통과가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김 교수는 “(삼성전자,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이 가능하면 국내에서 사업을 하고 싶어 하겠지만, 여건이 만들어지지 않은 한 사업하기 더 좋은 곳으로 갈 가능성도 있다”며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 25%의 감세 효과가 있는데 현재 6% 수준에 불과한 우리나라에 지으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지금 상황에서는 미국과 같은 다른 해외 지역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조속한 법 통과가 이뤄져야 한다”며 “특히 돌아가는 상황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세제 혜택은 20%가 아니라 25%를 해도 부족할 지경”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기업들만 발을 구르는 상황이다. 반도체 업계에서는 세제 혜택이 가장 중요한 만큼 20% 수준 또는 그 이상의 K-칩스법 통과가 절실하다고 설명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기업들은 혜택을 더 준다는 나라가 있다면 충분히 해외로 나갈 가능성이 있다”며 “K-칩스법 시행이 계속해서 늦어지면 반도체 호황이 도래했을 때 적기에 대응하지 못하고 대만, 미국에 크게 뒤처질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반도체 공장 하나에 30조 원가량이 들어 기업들 입장에서는 세제 혜택이 가장 중요하다”며 “삼성전자가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한 평택캠퍼스 P5, P6는 물론 부지를 이미 확정한 기업들은 빨리 칩스법이 통과돼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그 혜택으로 아낀 돈을 장비 도입, 우수 인재 영입 등 다른 곳에 투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반도체 공장 건설을 위한 인프라 구축에도 정부, 지자체, 기업 간 원활한 협의도 필수적이라고 내다봤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는 시간이 생명이다. 반도체 공장 하나를 만드는 데 고려해야 할 게 한두 개가 아니므로 조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세부적인 계획 확립에 나서야 한다”며 “특히 단순히 반도체 공장 유치, 건설하는 것에서 나아가 공장 설립 전ㆍ후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용수, 전기 공급, 토지 보상 관련 등의 빠른 해결에도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