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건 없어요.”
한 반도체 장비 업계 관계자는 2400억 원짜리 ‘ASML 화성 뉴 캠퍼스’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기존 캠퍼스를 확장한 수준일 뿐 새삼스러운 투자는 아니라는 의미였다.
ASML 화성 뉴 캠퍼스는 지난해 ASML이 화성시ㆍ경기도와 업무협약을 맺고 2400억 원을 투자해 경기 화성 동탄2신도시 1만6000㎡ 부지에 조성하기로 한 반도체 클러스터다.
네덜란드에 본사를 두고 있는 ASML은 반도체 미세공정에 필요한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업체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물론 미국 인텔, 대만 TSMC와 같은 굵직한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전 세계 반도체 기업들이 모시듯 하는 ASML이 국내에 대규모 투자를 한다고 하니 시작부터 업계에선 기대가 컸다. 하지만 EUV 장비 한 대 값 수준의 투자에 실망감이 컸다는 지적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뉴 캠퍼스에 들어가는 트레이닝 센터, 재처리 센터는 ASML 한국지사가 생겼을 때부터 이미 기존 캠퍼스 및 타 건물을 임대해 존재하고 있어 크게 새로운 투자는 아니다”며 “미국, 대만 등에 하는 투자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CS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의 역량을 키우고 국내 반도체 산업이 크려면 결국 ASML의 장비 생산시설이 들어와야 한다”고 덧붙였다.
최근 대만 정부 관계자는 페이스북을 통해 ASML이 대만 린커우 공일산업원구에 1조2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ASML은 미국에도 장비 연구·생산 시설을 운영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투자와 비교하면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그렇다고 마냥 국내에 투자를 확대하라고 요구하기도 어렵다. 파운드리 업계 1위인 TSMC가 대만에 있는 데다 대만과 미국 정부가 나서 자국 내 투자를 적극 유도하고 있어서다. 기업으로서는 파격적인 혜택을 주는 곳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15일 방한한 피터 베닝크 ASML 최고경영자(CEO)는 뉴 캠퍼스 기공식 관련 기자간담회에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과의 협업 관계가 긴밀해지고 국내 반도체 생태계도 강화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이번 투자는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말했다. ‘시작’에는 향후 투자 확대 가능성이 담겼다.
ASML 측은 뉴 캠퍼스 투자액인 2400억 원에 DUV, EUV, High-NA 장비 및 모듈을 포함한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등의 비용은 포함되지 않아 국내 총 투자액은 더 커질 수 있다고 밝혔다.
반도체 산업은 속도전이다. 특히 ASML 같은 대형 반도체 장비사의 대규모 투자 유치, 국내 산업 육성은 기업의 노력만으로는 될 수 없다. 정부, 지자체가 국내 투자 확대를 위한 제도 마련, 인프라 조성 등에 함께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때 비로소 ASML의 ‘시작’이 실현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