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금지하는 포지티브(Positive)→먼저 허용하는 네거티브(Negative)
정부의 지속적 협의·조정 필요…“노동·입지·환경·인증 등 규제 과감히 개선”
윤석열 정부가 규제개혁을 국정과제로 삼고 이를 가동하고 있지만 현 체제로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규제개혁 관련 신사업을 진행하는 것이 아닌 기존 법령을 재정비하고 지속적인 협의와 조정에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22일 중소벤처기업연구원의 ‘규제샌드박스 제도 시행에 따른 정책적 시사점과 정부의 새로운 역할’ 보고서에 따르면 “4차 산업혁명의 기술진보 속도가 빨라 기존의 법령ㆍ제도가 이를 따라잡지 못해 기술발전에 장애가 되는 제도적 지체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시행 4년 차를 맞는 규제샌드박스는 신기술 분야의 혁신을 뒷받침하기 위해 특정 조건에서 기존 규제를 유예ㆍ면제하는 제도다. 현재 국무조정실의 총괄 조정하에 5개 부처에서 6개 제도를 운용하고 있다.
또 현 정부 출범과 함께 국정과제인 ‘규제시스템 혁신을 통한 경제활력 제고’를 통해 규제혁신의 의지를 천명해 가속도가 붙었다.
보고서는 현 규제를 뒷받침하는 법령의 허점을 지적했다. 네거티브(Negative) 규제를 시행하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포지티브(Positive) 규제가 산업마다 층층이 얽혀있다. 포지티브 규제란 법률·정책상으로 허용하는 것을 구체적으로 나열한 뒤 나머지는 모두 금지하는 방식의 규제를 말한다. 법률·정책상으로 금지한 행위가 아니면 모든 것을 허용하는 네거티브 방식보다 규제 강도가 훨씬 강력하다.
기존 포지티브 방식에 따라 사회적 위험의 통제가 필요한 상황에서는 법령으로 허용되는 행위를 사전에 명시해야 한다. 이에 따라 신기술ㆍ신산업의 기술발전 속도를 기존 규제와 법령이 뒷받침하지 못해 근거 규정이 미비하거나 부적절한 경우가 다수 존재했다. 중기연은 포지티브 방식을 네거티브 방식으로의 전환을 통해 규제법령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했다. 또 부처 간 긴밀한 협력체계 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주장했다.
중기연은 이어 신기술 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두 번째 역할로 지속적 협의ㆍ조정을 꼽았다. 기존 법령과 규제 하에서 허용되지 않는 내용이더라도 신기술 사업화를 통한 새로운 경제적 가치 창출과 조화될 수 있는 절충점을 모색하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권식 중기연 연구위원은 “개인의료정보 활용이나 원격진료 등 신기술 분야에서는 부처·단체 사이의 이해관계와 갈등으로 규제법령의 완화나 폐지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실제로 규제샌드박스를 위한 특례 부여 과정이나 이후 규제개선 과정에서도 부처 협의나 이해관계자와 단체의 동의를 얻기가 매우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신기술 분야 규제법령은 여러 부처가 동시에 연관된 경우가 많아 규제샌드박스 적용 및 관련 규제법령의 개선이 어려운 특성이 있다”며 “규제샌드박스를 통해 제기된 규제 쟁점의 궁극적 해소를 위해서는 규제개선을 위한 부처간 협업을 원활히 이끌어 낼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협의·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중소기업계도 이같은 주장에 힘을 실었다. 업계는 매 정부 규제개혁에 목소리를 외치지만 정작 각종 규제가 현실과 동떨어져 불만을 제기했다. 그러면서 노동규제를 비롯해 환경규제, 과도한 인증부담, 포지티브 방식 각종 규제 등을 풀어달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과감한 규제 혁신으로 민간 중심 성장을 이끌겠다는 새 정부의 정책 방향에 많은 중소기업이 공감하고 기대하고 있다”며 “노동·입지·환경·인증 등 기업의 발목을 잡는 규제를 과감하게 개선해 기업을 경영할 맛 나는 환경이 만들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