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서울을 대표하는 지역적 중심은 어디일까요? 그곳은 아마도 조선시대 수도였던 한양의 사대문 안쪽에 있는 종로와 중구 일대로, ‘도심’이라고 불리는 곳일 것입니다. 서울시는 도시계획조례 시행규칙 제16조에서 도심의 범역을 정하고 있는데, ‘한양도성과 그 주변 지역을 포함하는 지역으로서 별지 도면에서 정한 구역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이러한 도심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여 관련된 계획을 수립하여 관리하고 있는데, 11월 8일 서울 도심을 재정비하여 도심 발전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새로운 계획이 발표되었습니다. 도심에 대한 최초의 종합계획인 ‘서울 도심부관리계획’이 2000년에, 청계천 복원에 따라 주변지역 관리를 위한 ‘도심부 발전계획’이 2004년에, 도심4축 사업 실행계획으로서 ‘도심재창조 종합계획’이 2007년에, 역사문화특성 보호와 한양도성까지 확대 및 전면 재정비를 위한 ‘역사도심 기본계획’이 2015년에, 그리고 낙후된 이미지의 서울 도심을 과거·현재·미래가 공존하는 우리나라의 대표 공간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서울도심기본계획’이 다시금 수립된 것입니다.
부동산 시장에서는 공청회 발표 자료를 바탕으로 도심에서의 높이 계획이 유연화되어 도심 개발에 호재가 왔다고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도시인들에겐 ‘도심’이란 단어가 언제부터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듭니다.
도시의 역사를 살펴보면 도심은 동양권에서 조성된 근대 이전의 도시에서는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로 외국에서도 주로 미국에서 사용하였습니다. 도심은 도시의 중심부로 한자로는 ‘都心’, 영어로는 ‘downtown’이라고 씁니다. 로버트 포겔슨(Robert M. Fogelson)의 저서 ‘다운타운(Downtown, 2001)에 따르면 가디어(Gardier)라는 영국 저술가가 1919년 미국을 처음 여행하면서 보았던 맨해튼의 기존 마을(town) 아래쪽의 고층 건물로 가득했던 뉴욕의 중심업무지구를 ‘다운타운(downtown)’이라고 일컬은 데서 유래되었다고 합니다. 다운타운이라는 용어는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하나 의미는 오늘날과 사뭇 다르다고 합니다. 1830~40년대 뉴요커로 사업가이며 시장을 역임했던 필립 혼(Philip Hone)에 따르면 다운타운은 지리적인 구분으로써, 맨해튼 섬의 남쪽 지역을 의미하고 북쪽 지역은 업타운(uptown)이라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또한 비슷한 시기에 월스트리트에서 일했던 조지 스트롱(George Strong)은 다운타운은 업무지역을 의미하고 업타운은 주거지역인데 좀 더 잘사는 주거지역을 지칭한다고 했는데, 우리나라도 같은 마을이라도 공간적으로 위에 있는 마을(윗마을)과 아래에 있는 마을(아랫마을)을 구분하듯이 그 당시 뉴요커들도 지리적 관점에서 위쪽 마을(uptown)과 아래쪽 마을(downtown)이라고 명명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대 들어 다운타운은 점점 더 도시의 변화하는 구조를 반영해 본래의 지역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기능적 의미를 담는 단어로 변화된 것 같습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다운타운이라는 용어는 1881년의 웹스터 사전과 1886년의 우스터 사전에도 나오지 않았고 1900년대 초반이 되어서야 영어 사전에 등장하기 시작했으며, 유럽 도시에서는 알려지지 않았던 매우 생경한 단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중심업무지구(中心業務地區, Central Business District)와 도심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CBD는 도심지역, 특히 대도시에서 상업, 사회, 문화, 교통 등 도시의 중추관리기능이 집중된 지역을 말하는 것으로 도심과 매우 유사한 면이 있는데, 이것 또한 매우 미국적인 정의로 2차 세계대전 전에는 세계적으로 사용되지 않았던 용어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CBD는 20세기 미국 도시에서 대표적으로 나타나는 매우 고유한 현상이어서, 정의하기도 어려웠을 뿐더러 법적으로도 명문화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50년대에 미국 도시지리학자들이 CBD를 학문적으로 다양하게 연구하기 시작하여 어니스트 버제스(Ernest W. Burgess)의 동심원 이론(Concentric Zone Theory)을 필두로 도시공간의 성장을 설명하는 다양한 이론들이 출현하게 된 것입니다.
도심과 중심업무지구는 의미에서 다소 혼란스러운 점이 있는 것이 사실이라 서로 호환해서 불릴 수 있다고 학계에서도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도시는 대부분 도심이라는 좀 더 포괄적인 도시의 중심지역을 가지고 있으나 모든 도시가 중심업무지구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도시에서 도심은 하나만 존재할 수 있으며, 중심업무지구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고 다수일 수도 있습니다.
범세계적으로 상호 경쟁하는 대도시들의 중심인 도심은 수많은 변화와 경쟁 속에서 성장하거나 쇠퇴하기를 반복하였고, 저성장과 팬데믹을 겪고 있는 최근에는 특히 새로운 기능의 수용과 더 많은 변화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서울도 예외가 될 수 없기에 이번에 발표된 새로운 계획을 통해 대한민국의 대표 도시공간인 서울 도심이 어떠한 경쟁력을 가지며 세계 도시와 경쟁하게 될는지 자못 궁금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