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 생명‧공동체 보호 못한 뼈아픈 책임감 느껴”
사고 대응에 대검‧지검 검사장 2명 즉각 배치…이례적
이원석 검찰총장이 17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이후 처음 열린 11월 월례회의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이 총장은 이날 월례회의를 앞두고 전날 새벽 2시 넘어서까지 검찰 구성원 모두에게 전달할 메시지를 고민하며, 직접 원고를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총장은 이 자리에서 “국민의 생명과 신체, 안전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보호하는 것이 검찰의 존재이유이자 책무이기에 뼈아픈 책임감을 느낀다”고 밝혔다. “국민의 생명, 신체, 안전과 재산을 지키고 우리 공동체를 보호‧유지하며 발전시키자”라는 검찰의 존재이유는 이 총장이 검찰총장 직무대리 때부터 여러 차례 강조해온 역할론이다.
이 총장은 “국가는 국민의 눈앞에 ‘구체적’ 존재로 실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관념에 불과하다”면서 “현실에서는 주민센터, 지방자치단체, 우체국, 경찰서, 검찰청, 소방서와 같은 공적 기관과 그 구성원들이 국가를 구성하고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에게 ‘국가’로 받아들여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국민은 검찰청 민원실에서, 검사실에서, 재판정에서 국가를 만나게 되며 그 곳에서 검찰 구성원이 ‘해야 할 일’을 게을리 하거나 제대로 해내지 못할 때, 그리고 ‘하지 않아야 할 일’을 할 때 곧바로 “국가는 없다”라고 여기며 신뢰를 거둬들인다고 지적했다.
대검은 지난달 30일 ‘이태원 참사’ 발생 직후 사고 대책본부를 구성했다. 본부장은 황병주 대검 형사부장이 맡았다. 서울서부지검은 한석리 지검장을 반장으로 종합대응반을 구성‧운영 중이다. 검찰이 사고 대응을 위해 검사장 두 명을 수사지휘자로 즉각 배치한 일을 두고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검찰은 희생자 검시, 신원 확인과 유족 인도가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했고 경찰 수사에 협력하고 있다. 검찰로 송치된 후엔 정확한 원인과 책임 규명,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한다는 방침이다.
이 총장은 “매시 범죄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 보고와 지시에 시간과 노력을 헛되이 쓸 수는 없으며 검찰 구성원 개개인이 현장에서 책임감‧자율성‧유연성을 바탕으로 국민 기본권 보호에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대검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하는 정례적인 아침‧저녁 회의를 하지 않고 있다. 수시로 필요한 경우 업무 유관부서장을 불러 짧고 효과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보고서에 정성을 쏟을 시간에 한 건이라도 더 사건 처리를 신속히 하라’는 이 총장의 의중이 반영된 결과다.
국민 안전이 무엇보다 중요해진 시기 검찰은 산업재해 사건 수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사회적 대참사를 직접 수사할 수 없게 된 검찰 입장에서는, 직접 수사가 가능한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사건을 엄중히 다뤄 한 사람의 국민이라도 더 안전하게 지키는 데서 검찰의 존재이유를 다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 총장은 이날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의 선진국에 진입했다고 평가받는 우리나라에서 매년 800명 이상의 산재 사망자가 발생하고 있다”며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뒤에도 통계상 산재 사망자가 줄어들지 않고 있으나, 시행 첫 해에 곧바로 실효성을 평가하기는 어려우며 지속적으로 엄정한 법집행을 통해 산재를 줄이고 예방해야 한다”고 말했다.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그 무엇도 없다”는 대전제 아래 산재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고 그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산재가 대폭 감소하고 예방된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엄정히 대응해 주기 바란다고 주문했다.
이 총장은 신임 검사‧부장 등 검찰 구성원을 대상으로 법무연수원 강의를 할 때마다 검찰을 ‘소금’에 비유하며 ‘산상수훈’의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라는 구절을 자주 인용하곤 한다.
이 총장은 최근 대검에서 인권 특강을 한 풀꽃시인 나태주 선생과 이를 놓고 대화를 나누다 “소금은 제 몸을 녹여야 짠맛을 낼 수 있다”는 말씀을 들었고, 세상을 썩지 않게 그리고 이롭게 만드는 헌신과 희생을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전했다.
이 총장은 “검찰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반듯이 해내지 못해 고유의 짠맛을 잃어버리면, 종국적으로 국민의 믿음을 잃고 버려져 짓밟히게 될 것이라는 섬뜩한 경고를 되새기게 된다”고 회의를 마쳤다.
박일경 기자 ekpar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