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연말과 내년 초 주요 금융그룹 회장과 은행장 임기가 대거 만료되는 금융권이 '외풍'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반전의 상황이 연출됐다. 정치권과 정부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수협은행에서 내부 출신 행장이 선출된 것이다.
금융권에서는 노골적인 외압이 되레 반발을 불러일으켰다며, 내심 반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금융권 인사 과정에 개입하려는 움직임은 여전한 상황이어서 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수협중앙회는 17일 총회를 열고 강신숙 수협중앙회 부대표를 수협은행장으로 선임한다. 앞서 수협은행 행장추천위원회(행추위)는 15일 은행장추천위원회를 열고 강 부대표를 차기 은행장 후보로 단독 추천했다.
강 부대표 선임에 수협은행 직원 뿐 아니라 CEO 선임을 앞두고 있는 다른 금융권 관계자들도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행장 선출 과정에서 정부 입김이 작용할 것이란 당초 예상을 뒤집었기 때문이다.
그간 수협 은행장 선출 과정에서 한 차례 후보 재공모와 급작스러운 최종 후보 선출 연기 등 잡음이 일면서 금융권에서는 외압 때문이 아니냐는 추측이 제기됐다. 수협중앙회 내부에서도 "정부가 밀고 있는 인사 때문에 선임 과정이 늦어지고 있다"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결국 내부 출신 행장이 선출되면서, 정부가 외압 논란에 부담을 느끼는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본격적인 인사를 앞두고 잡음을 만들지 않겠다는 의중이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한 금융권 인사는 "금감원장이 특정 인사를 겨냥하고 나선 상황에서 굳이 시끄러운 상황을 연출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며 "당장 현재 진행되고 있는 BNK금융 인사가 어떻게 진행될 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에 인사를 앞두고 있는 금융사들은 사태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당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임기가 다음 달 말 만료되며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임기는 내년 3월 말까지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내년 1월까지가 임기다.
신한금융은 민간회사로 그나마 정부 입김에서 자유롭지만 농협과 기업은행은 벌써 차기 인사에 대한 말이 나오고 있다. 특히 농협의 경우 역대 농협금융 회장들이 2+1년 임기를 채운 만큼 연임 가능성이 큰 상황임에도 경제 관료 출신의 윤석열 정부 인사가 눈독을 들이고 있다는 뒷얘기가 나오고 있다.
기업은행은 구체적인 인사까지 거론되고 있다. 정은보 전 금융감독원장, 이찬우 전 금감원 수석부원장, 도규상 전 금융위원회 부위원장 등이다. 이 중 정 전 원장이 강력하게 거론되자 기업은행 노조는 시위까지 불사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날 기업은행 노조는 금융위원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투명·공정하게 이뤄져야 할 은행장 선임이 혼탁해지고 있다"며 "정 전 원장 뿐 아니라 정부 측 어떤 인사도 낙하산으로 내려와서는 안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