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매체 민들레와 더탐사가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유족 동의를 거치지 않고 공개하자 유족과 법조계에서는 비판의 목소리가 표출되고 있다. 위법으로 규정짓지 못하더라도 재난보도준칙이나 국제 기준에 비춰봤을 때 부적절한 행위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5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유족 동의를 거치지 않고 명단을 공개하는 행위를 법적으로 처벌하기 어렵다. 당사자 동의 없이 이름 등 개인정보를 공개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사망자 정보는 법률상 개인정보로 볼 수 없다는 의견이 우세하다. 사자 명예훼손죄를 적용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오지만 형법에 따르면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자의 명예를 훼손한 행위를 처벌하고 있다. 이름 등 명단 공개는 허위 사실이라고 볼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온다.
다만 명단 입수 과정에서 법을 위반한 정황이 있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만약 명단을 관리하는 책임자가 동의 없이 유출했다면 양측 모두 처벌받을 수도 있다. 명단 공개로 유족들이 정신적 피해를 받았다면 법적 대응에 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유족 사이에서는 적절한 동의 절차도 없이 명단을 공개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한 희생자 유족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워싱턴포스트에 희생자 사진과 이름이 보도됐다고 하는데 그들은 (공개에) 동의를 한 사람들이고, 민들레나 더탐사는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위반하지 않았더라도 적절한 행위는 아니라고 본다"며 "위령비 건립 등 추모 사업도 원치 않는다"이라고 토로했다.
법조계도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의 ‘10‧29 참사 진상규명 및 법률대응 TF’는 전날 성명을 내고 "개인의 인격과 내밀하게 연결된 프라이버시의 공개가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희생자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헌법과 국제인권기준이 정한 프라이버시에 대한 권리 보호의 원칙에 따라 희생자들의 명단이 유가족들의 동의 없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보호조치가 취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난보도 준칙을 어겼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재난보도준칙 제19조(신상공개주의)는 피해자와 그 가족, 주변 사람들의 상세한 신상 공개는 인격권이나 초상권, 사생활 침해 등의 우려가 있으므로 최대한 신중히 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야권에서도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희생자 명단 공개는 정치권이나 언론이 먼저 나설 것이 아니라, 유가족이 결정할 문제라고 몇 차례 말씀드린 바 있다”며 “과연 공공을 위한 저널리즘 본연의 책임은 어디까지인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고 언급했다.
한편, 민들레는 명단을 공개하면서 "얼굴 사진은 물론 나이를 비롯한 다른 인적 사항에 관한 정보 없이 이름만 기재해 희생자들이 구체적으로 특정되지는 않는다"며 "유가족협의체가 구성되지 않아 이름만 공개하는 것이라도 유족들께 동의를 구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는 깊이 양해를 구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