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천성면역결핍증(에이즈)에 감염된 사람이 다른 사람과 접촉하면 처벌한다는 에이즈 예방법은 위헌일까. 10일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에서는 관련 조항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했다는 주장과 콘돔 없는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이 감염인의 행동자유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충돌했다.
헌재는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헌재 대심판정에서 에이즈 예방법 제19조 등 위헌제청 사건에 대한 공개변론을 열었다. 사건이 접수된 후 2년 11개월 만이다. 변론에서는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는지 여부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을 침해하는지 여부 △다른 감염병에 대한 처벌과 비교하여 평등원칙을 위반하는지 여부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에이즈 예방법 19조에 따르면 감염인은 혈액이나 체액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파매개행위를 해서는 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25조2호는 19조를 위반해 전파매개행위를 하면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이 사건 피고인은 에이즈 감염 사실을 숨긴 채 콘돔 사용 없이 상대방과 유사성교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기소됐다. 서울서부지법은 2019년 12월 해당 조항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재에 위헌법률심판을 제청했다. 당시 감염인으로 신고된 피고인은 "'체액', '전파매개행위'가 광범위해 죄형법정주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한다"며 "항레트로바이러스제를 꾸준히 복용하면 체내 에이즈 농도가 검출 한계치 아래로 떨어져 타인을 감염시킬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피고인 측 참고인인 최재필 서울의료원 감염내과 과장은 "감염인이 치료를 잘 받는다면 ‘혹시 모를 전파의 가능성’이 있는 것이 아니라 ‘감염가능성이 없음’으로 드러났다"는 의견을 냈다. 이어 "그런데 실제 법 집행 실무는 ‘전파가능성이 0이라고 일반화할 수 없다’는 이유로 감염가능성이 없는 상태에 있는 자의 전파매개행위를 처벌하고 있다"며 "전파매개행위를 처벌하는 현 법제는 의과학적 사실과 맞춰 정합적이지 않은 수단을 택하며 예방정책과 관련된 공중보건 지표 개선에 악영향을 준다"고 비판했다.
이해관계인인 질별관리청은 '체액', '전파매개행위'가 전파가능성이 있는 경우로만 제한해 해석할 수 있으므로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을 위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질병관리청은 "항레트로바이러스 요법 등만으로 감염예방에 한계가 있다"며 "감염인의 콘돔 없는 성행위를 처벌하는 것은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감염인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이해관계인 측 참고인인 박재평 충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감염인 기본권 제한뿐 아니라 감염인이 되거나, 될 우려가 있는 불특정 다수의 일반적 행동자유권 등 보장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는 "다른 감염병 관련 법률상 전파도 전파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한다"며 "전파매개행위죄 역시 전파매개행위 일반이 아닌 전파가능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되는 것은 예측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공개변론이 시작 전 시민단체들은 헌재 앞에서 위헌 판결을 촉구했다. HIV/AIDS인권활동가네트워크는 "커다란 제도적 방해물이 남아 HIV감염인을 범죄화하고 있다"며 "HIV감염여부와 상관없이 누구라도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존중받고, 기본권을 보호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