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한계기업 부실화 커질 것…대손충당금 추가 적립 등 건전성 관리해야"
금융당국이 기업 지원 확대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운데, 국책은행의 재무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내년에 한계기업 수가 증가하고 유동성 확대를 위한 국책은행의 역할이 커지면서 건전성 악화를 주의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금융당국은 은행 등 금융기관에 기업 유동성 확보에 힘을 모을 것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27일 은행과 저축은행의 예대율 규제를 한시적으로 완화하면서 중소기업 등의 자금 조달 여건을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또 같은 달 28일 금융시장 점검·소통회의를 열고 KDB산업은행(이하 산은)ㆍIBK기업은행(이하 기은) 등 정책금융기관의 채권발행을 최소화해 회사채 시장의 수급 요인을 개선할 것을 당부했다.
이 같은 금융당국의 방침은 은행 중에서도 산은과 기은에 더 큰 부담을 안긴다. 정책금융 업무를 수행하는 국책은행이기 때문이다. 산은은 올해 3월 말 총자산 중 대출채권이 약 60%에 달한다. 대출채권은 국가 기간산업의 시설자금 위주로 운용되기 때문에 산은의 기업여신 중 대기업여신 비중은 70% 내외다.
조달자금의 70% 이상을 중소기업 금융지원에 사용해야 하는 기은의 경우 올해 6월 말 기준 중소기업대출이 전체 원화대출금의 81.1%를 차지한다.
기은 관계자는 "내년에도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이 지속됨에 따라 경영위기에 봉착할 중소기업이 많아질 것으로 예상되므로 경영 정상화, 애로사항 해소를 위한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할 것"이라며 "현재 당국과 발맞춰 중소기업 지원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국책은행의 역할이 커지면서 건전성 위험 부담도 함께 늘고 있다는 점이다.
나이스신용평가는 기업은행에 대해 "경기둔화에 대한 대응력이 미흡한 중소기업여신 비중이 올해 3월말 기준 79.2%로 높고 고정이하중소기업여신비율은 0.9%로 시중은행의 평균(0.4%)를 상회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취약 업종 한계차주를 중심으로 자산건전성 저하 부담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기은 측은 현재로선 재무 건전성에 큰 무리가 없다는 입장이다. 기은 관계자는 "3분기 고정이하여신비율과 총연체율은 전년 동기 대비 각각 5bp, 2bp 개선된 0.80%와 0.27%를 기록하는 등 양호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다"며 "신종자본증권 추가발행은 따로 계획된 건 없다"고 전했다.
한국신용평가는 산은에 대해 "총여신대비 위험업종(철강, 조선, 해운 등) 기업여신이 15.0%로 높아 향후 특정 업종의 업황 악화로 인한 자산건전성 저하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일반산업의 시장실패를 보완하는 정책 차원의 자금지원 역할을 수행함에 따라 잠재적 부실발생위험에 노출돼 있다"며 "이에 따라 은행의 수익성은 대손비용 증감 여부와 종속기업 및 관계기업(구조조정기업)의 투자주식 가치 변동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전력공사의 손실에 따라 산은의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고 있다. 산은은 한전의 지분 32.9%를 가진 대주주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지난달 2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한전에 1조 원 손실이 나면 지분법상 산은의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6bp 낮추는 효과가 있다"며 "한전의 올해 말 손실액이 21조 원으로 예상되고, 산은의 BIS 비율이 1.37%포인트(p) 떨어져 기업 지원 능력 한도를 한 해 33조 원 가량 떨어뜨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년에 한계기업의 부실화 속도가 빨라지면 국책은행 건전성은 더 악화할 수 있다. 한계기업의 수는 이미 증가하는 추세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2021년 한계기업 수는 총 2823개사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 2283개사와 비교했을 때 23.7%(540개) 늘었다.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내년 한계기업의 수가 늘고 부실화 정도도 심각해질 것으로 내다봤다.
정 소장은 "내년 초까지 계속 미국과 일정하게 격차가 벌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금리는 계속 상승할 것"이라며 "금리 인상 기조에서 이미 한계기업으로 분류된 기업은 조달한 돈을 갚아야 하는 부담이 커지는 반면 매출은 크게 늘지 않아 부실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동성 부족 문제 대응에서도 국책은행의 역할이 커지면서 부담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증권업계 측은 올해 연말에 유동성 부족에 따른 대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추가 대책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CP 시장의 경우 정책 효과가 아직 크게 보이지 않는다"며 "CP 시장의 발행금리는 여전히 오르고 있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역시 기초자산과 신용을 제공한 회사에 따라서 같은 신용등급 내에서도 가격이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PF ABCP 시장은 강원도의 레고랜드 사태로 인해 유동성이 경색된 바 있다.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산업은행은 증권사에 유동성 지원을 위해 '2조 원 +α'규모의 증권사 기업어음(CP)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다. 전날 김주현 금융위원장이 증권사 유동성 추가 지원에 관해 "민간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은 민간이 해결하는 게 맞다"고 했지만, 업계에서 추가 지원 요구가 계속되면 국책은행의 부담이 가중될 위험이 적지 않다.
이런 상황에 대비해 국책은행들은 건전성 강화를 위한 노력을 꾀하는 중이다. 기업은행은 올해 상반기 4306억 원의 대손충당금을 추가로 적립해 미래 위험에 대비해 손실 흡수 능력을 높였다. 산업은행 측은 "시중은행보다 기업 부실화에 따른 영향을 많이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PF, 트레이딩 등의 업무를 활발히 하며 벌어들이는 수익을 기반으로 BIS 비율 등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답했다.
정 소장은 "공적인 역할을 맡는 특수은행은 중소기업의 상황이 안 좋아졌다고 해도 기업대출을 줄이거나 회수하기 어렵다"며 "한계기업의 부실을 상당 부분 떠안아야 하는 상황이 오기 때문에 국책은행의 재무 건전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이어 "손실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건전성을 유지하려면 충당금을 쌓거나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며 "대손충당금을 두텁게 쌓아서 부실이 커져도 자본까지 영향을 주지 않는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