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액 급증…상환능력은 악화해
금리 인상 조절, 법인세 경감 필요
최근 레고랜드 사태로 시작된 자금경색이 금융시장에 혼란을 가져온 가운데 국내 주요 기업의 자금 순환에 경고등이 켜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는 또 다른 채무불이행 사태가 촉발될 위험이 있으므로 기업 유동성을 확충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31일 ‘기업 대출 부실 징후’ 분석 결과를 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기업 대출 △기업들의 대출 상환능력 악화 △높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 △부동산 등 취약 업종으로의 대출 쏠림현상 △비은행기관을 통한 대출 비중 증가 등 5가지 요인을 제시했다.
전경련은 코로나19 이후 급증한 기업 대출을 첫 번째 부실 징후로 꼽았다. 전경련에 따르면 팬데믹 이전 10년간(2009~2019년 말)은 기업 대출이 연평균 4.1% 증가했다. 반면 팬데믹 이후 현재(2019년 말~올해 상반기)까지 2년 반 동안 기업 대출 연평균 증가율은 12.9%에 달했다.
그 결과 기업 대출금액은 2019년 말 976조 원에서 올해 상반기 1321조3000억 원으로 2년 반 만에 345조3000억 원(35.4%) 증가했다. 이는 코로나19 위기 전 10년간 증가한 대출(324.4조 원)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전경련은 기업들의 상환능력이 급속히 취약해지고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부채의 상환능력을 평가하는 지표인 소득 대비 원리금 상환비율(DSR)을 주요국들과 비교해보면, 한국을 제외한 16개국 기업들의 DSR은 팬데믹 이전(2019년) 평균 41.1%에서 올해 1분기 40.6%로 0.5%포인트 감소하며 상환능력이 개선됐다. 반면 한국 기업들의 DSR은 같은 기간 37.7%에서 39.7%로 오히려 2.0%포인트 늘어나며 상환능력이 악화했다.
전경련은 변동금리 대출 비중이 높은 것도 부실 징후로 꼽았다. 기업 대출의 대부분이 금리가 오르면 원리금 상환 부담이 늘어나는 변동금리 대출이라는 것이다.
전경련에 따르면 올해 9월 대출 잔액 기준으로 기업 10곳 중 7곳 이상(72.7%)이 변동금리 대출을 받았고, 고정금리 대출은 10곳 중 2~3곳(27.3%)에 불과했다. 신규대출 중 변동금리 비중은 팬데믹 이후 최저 58.8%(2020년 2월)에서 최고 73%(2022년 7월)까지 높아졌다.
취약 업종에 대출이 집중된 것 역시 부실 징후로 꼽혔다. 대출집중도 지표를 통해 기업 대출을 업종별로 살펴보면 올해 상반기 기준 취약 업종·경기민감 업종인 부동산업과 도소매업, 숙박음식업의 대출집중도가 각각 2.8과 2.1, 2.0으로 국내총샌산(GDP) 비중 대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대출집중도는 특정 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 대비 대출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의 비율이다. 대출집중도가 1보다 크면 해당 산업의 GDP 비중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대출이 유입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경련은 비은행기관의 대출 비중이 증가한 것도 부실 징후로 지적했다. 기업 대출을 금융기관별로 살펴보면 코로나19 이후 예금은행과 비은행기관을 통한 대출이 모두 증가한 가운데 상대적으로 대출금리가 높은 비은행기관의 배출 증가율이 2배 이상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경련에 따르면 2019년 말 이후 올해 상반기까지 연평균 기준 예금은행은 10.9% 늘어난 데 비해 비은행기관은 27.5% 증가했다. 그 결과 전체 예금취급기관 중 비은행기관을 통한 기업 대출 비중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인 29.7%를 기록했다.
전경련은 기업 대출 부실화 방지를 위한 방안으로 △기준금리 인상 속도 조절 △법인세제 개선을 통한 기업 세부담 경감을 제시했다.
전경련은 “미국의 공격적 금리 인상에 따른 국내 기준금리의 추종이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기업들의 자금 사정이 급속이 악화하고 있는 만큼 금리 인상의 속도 조절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법인세 부담 경감은 기업의 잉여소득을 간접적으로 확충함으로써 경제위기 시에는 자금 사정 압박을 견딜 게 할 수 있는 중요한 금융 방어적 수단”이라며 “정부 세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논의가 조속히 이뤄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