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채운의 혁신성장 이야기] ‘M&A 큰손’ 사모펀드, 천사인가 악마인가

입력 2022-10-28 05:00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사모펀드의 존재감을 널리 알린 것은 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Lone Star)이다. 론스타는 2003년 1조4000억 원에 인수한 외환은행을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매각해 4조 원의 차익을 남겼고, 그러고도 모자라 매각승인 지연을 이유로 우리 정부에 6조 원 상당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10년을 끈 오랜 분쟁 끝에 8월 말 국제투자분쟁중재센터(ICSID)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2800억 원을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정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대부분의 외국인 투자자가 우리나라를 외면할 때 귀한 달러를 투자해 천사로 칭송받던 론스타는 온갖 비리와 편법에 소송까지 동원해 한 푼이라도 악착같이 더 벌어 가려는 악질 사모펀드로 낙인찍혔다.

사모펀드(PEF)는 소수의 투자자로부터 비공개로 모은 자금을 제약 없이 운용하여 고수익을 추구하는 펀드를 말한다.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를 완화한 2015년 이후 그 수가 급증해 현재 1000개를 넘어선다. 사모펀드는 벤처캐피털과 달리 모험투자를 하지 않는다. 사모펀드의 투자전략은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기업가치를 높인 다음 이를 되팔아 이득을 취하는 것이다. 비혈관 스텐트 제조 국내 1위 기업인 엠아이텍은 6년 전 사모펀드에 300억 원에 인수되었다가 얼마 전 미국의 보스턴사이언티픽에 10배 가까운 3000억 원에 팔렸다. 기업 인수합병(M&A) 시장에서 사모펀드가 인수한 회사는 오비맥주, 홈플러스, 한샘, 서브원, 투섬플레이스, bhc, 맘스터치, 메디트 등으로 쟁쟁하다.

최근에는 창업주들이 은퇴하여 경영일선에서 물러나는 중소·중견기업이 사모펀드에 의해 인수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특장차 제조업체인 이텍산업은 2020년 하반기에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이 대표로 있는 사모펀드에 2000억 원대 금액으로 매각되었다. 화장지, 물티슈 등 다양한 위생용품을 제조·판매하며 10년 동안 매출이 성장하여 시장점유율 2위까지 올라간 미래생활은 올해 상반기에 사모펀드가 3000억 원에 인수하였다.

사모펀드가 집중적으로 인수한 중소기업 업종도 있다. 바로 ‘김 제조업’이다. ‘지도표 성경김’ 브랜드의 조미김으로 유명한 성경식품, ‘만전김’으로 알려진 고급 김 제조업체 만전식품, ‘해농김’을 만드는 해농식품이 모두 사모펀드에 인수되었다. 수출 1위 식품인 한국 김에 대한 해외 수요가 증가하여 성장잠재력이 높고, 중소기업이라 기업가치가 저평가된 점이 사모펀드의 주목을 끈 이유이다.

사모펀드는 가업승계가 어려운 중소기업의 새로운 지배구조 대안으로 부상하고 있다. 유망한 중소기업이 사모펀드에 매각되는 이유는 창업주의 2세들이 가업을 물려받기를 원하지 않을뿐더러 가업승계에 따른 상속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경영자의 고령화가 가속화되면 사모펀드에 의한 중소기업 인수합병(M&A)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사모펀드는 중소기업에 자금뿐 아니라 경영자원과 판로도 제공하여 중소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사모펀드의 목표는 인수한 중소기업의 성장잠재력을 최대한 이끌어내 기업가치를 높여 다시 파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소기업이 필요한 자금에 더하여 유능한 경영진도 보내 경영효율을 높이고자 노력한다.

한때 마스크팩 수출로 크게 성장했다가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매출이 급감해 자금난에 시달리다 창업주가 사모펀드에 매각한 어느 화장품 중소기업은 사모펀드 측에서 은행 대출금도 갚아주고 독일 바스프에서 근무한 박사급 연구소장을 보내 신제품 개발을 지원하는 데다 유럽 시장 수출도 연계시켜 주어 전혀 다른 강소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처럼 사모펀드는 잠재력이 크면서 일시적 경영난에 빠진 중소기업이 상장하지 않고도 기업주가 출구(Exit)를 찾아 나갈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현대식 경영이 중소기업에 도입되는 것도 긍정적이다.

사모펀드는 기업 시장과 더불어 전문경영자 시장도 활성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사모펀드가 재매각하며 지분 차익만 5조 원을 넘겨 투자 성공의 신화가 된 오비맥주의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임원은 이 사모펀드가 인수한 서브원에 영업되어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사모펀드에 의해 발탁된 경영자들이 국내 기업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인맥과 연고의 벽을 허물고 능력만으로 평가받는 조직문화를 만들어나갈 것으로 예상한다.

앞으로 사모펀드가 우리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예측하기 어렵다. 자본의 힘과 투자의 창의성에 의해 움직이는 사모펀드가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모른다. 행동주의 투자전략으로 기업을 감시하는 수비수에서 부실경영으로 기업가치를 훼손하는 기업을 인수해 회생시키는 공격수 역할이 확대될 것이다. 멀쩡한 기업을 인수해 대대적으로 인력을 구조조정한 다음에 자산만 분할 매각하는 사례도 나올 수 있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긁어 부스럼 만든 발언?…‘티아라 왕따설’ 다시 뜨거워진 이유 [해시태그]
  • 잠자던 내 카드 포인트, ‘어카운트인포’로 쉽게 조회하고 현금화까지 [경제한줌]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말라가는 국내 증시…개인ㆍ외인 자금 이탈에 속수무책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트럼프 시대 기대감 걷어내니...高환율·관세에 기업들 ‘벌벌’
  • 소문 무성하던 장현식, 4년 52억 원에 LG로…최원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4,370,000
    • +3.8%
    • 이더리움
    • 4,437,000
    • +0.2%
    • 비트코인 캐시
    • 605,500
    • +1.59%
    • 리플
    • 814
    • +0.25%
    • 솔라나
    • 294,900
    • +3.18%
    • 에이다
    • 814
    • +0.49%
    • 이오스
    • 778
    • +5.28%
    • 트론
    • 230
    • +0.44%
    • 스텔라루멘
    • 153
    • +1.32%
    • 비트코인에스브이
    • 83,000
    • +1.03%
    • 체인링크
    • 19,470
    • -3.71%
    • 샌드박스
    • 405
    • +2.02%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