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번 신용경색은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큰 폭으로 급히 인상하면서 어느 정도 예고되었다고 볼 수 있다. 회사채와 공사채는 국채보다 신용도가 낮아 이자를 더 많이 줘야 발행할 수 있는데, 10월에 들어서면서 연초에 비해 지급해야 하는 이자가 거의 두 배로 뛰었다. 증권사, 자산운용사 등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주로 공사채나 회사채에 투자하는데, 올해와 같이 금리가 급격하게 인상되면 이미 투자한 채권의 평가손실이 너무 커져서 더 투자할 여력을 잃게 된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저금리 시절에 과도하게 많이 발행된 채권의 만기가 속속 돌아오는데 기관투자자의 수요 감소로 채권시장의 유동성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채권시장에서 신용위기는 마치 심장병 환자의 심혈관이 정지되는 것처럼 다른 기관으로 급속하게 퍼져 간다. 요즘같이 금리가 상승하는 시기에는 채권가격이 더 하락할 것으로 기대하여 채권투자에 대한 수요가 감소한다. 채권 수요가 위축되면 채권시장의 자금조달 기능이 약화하거나 상실된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자본시장의 약한 고리인 비은행권 금융기관은 여신전문금융채권(여전채)의 차환발행이 어려워지면서 부도위기에 내몰리게 된다.
이러한 신용위기 상황에서 중앙은행은 인플레이션을 타개하기 위해 금리인상의 속도와 폭을 확대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선택인가? 이에 대한 답은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유럽과 미국의 대응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먼저 미국은 금융위기 당시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재원을 마련하고 재무부가 구제금융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신용위험을 부담하였다. 이때 재무부는 대규모의 자금을 빠르게 투입하였고, 그중 일부가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재무부가 책임을 졌다.
미국과는 반대로 유럽중앙은행(ECB)은 처음에는 시장에 개입하지 않았다. 2010년 유로위기 때 유럽중앙은행은 마스트리히트 조약상의 구제금융 금지조항에 따라 당시 신용경색을 겪던 그리스 국채를 매입하지 못했다. 그리스는 막대한 대가를 치렀다. 그리스 국채가격이 급락하면서 금융회사는 파산하고 국민은 뱅크런을 경험했다. 그리스는 높은 이자율로 국채를 발행해야만 했고, 대규모 실업을 초래하고 유로존에서 퇴출될 위험에 빠지면서 강력한 긴축정책을 강요받았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2012년 7월에 유로를 위해 필요하다면 국채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다음에야 남유럽의 위기는 진정되었다.
두 사례에서 교훈을 찾는다면, 이제부터라도 한국은행은 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실용적인 통화정책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우선 은행권이 요구하는 적격담보증권의 범위를 확대하고, 금융안정특별대출이나 기업유동성지원기구(SPV)를 통해 금융시장에 유동성을 충분히 공급할 필요가 있다. 물론 정부가 준비 중인 채권시장안정펀드는 우량 채권의 차환에 문제가 생기지 않게 규모를 확대하고 신속하게 투입되어야 실효성이 있을 것이다. 부동산 PF시장에 과도하게 노출된 비은행 금융기관의 상황이 심각한데 신속한 조치가 없다면, 정부와 한국은행은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할 수도 있다. ‘1톤의 생각이나 토론’보다 ‘1그램의 실행’이 시급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