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등 일부 주종을 전통주로 편입하는 내용 등을 담은 '전통주 개정안' 마련이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 수입산 쌀을 원료로 한 막걸리는 전통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하면서, 이해관계자들 간 입장 차가 평행선을 달리고 있어서다. 전통주 개정안 마련 시한은 당초 이달이 목표였으나, 준비가 늦어져 올해를 넘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27일 본지 취재 결과 정부의 ‘전통주 등의 산업 진흥에 관한 법’(이하 전통주산업법) 개정안 마련이 지연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와 주류업계는 이달 내 법 개정안이 준비될 것이라고 봤다. 하지만 막걸리 원료가 문제로 불거지면서 결국 목표 시한인 이달을 넘기게 됐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달 내 준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라면서 “개정에 대한 의지가 있는 만큼 현재는 ‘숨 고르기‘에 들어간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농식품부는 ‘농식품 규제개혁 전략회의’를 열고 전통주산업법 개정을 포함한 규제 개선과제를 선정한 바 있다. 기존 전통주 카테고리 안에 있던 지역특산주를 별도 분리해 전통주와 같은 선상으로 격상시키고, 막걸리, 청주 등 일부 주종을 전통주로 편입하는 것이 골자다.
개정안 준비가 늦어진 핵심 쟁점은 ‘국순당 막걸리’, ‘장수 막걸리’ 등 수입산 쌀을 사용하는 막걸리의 전통주 편입 여부다. 현재는 △국가가 지정한 장인이 만든 술 △식품 명인이 만든 술 △지역 농민이 그 지역 농산물로 만든 술 등을 전통주로 규정하고 있다. ‘박재범 원소주’, ‘토끼 소주’ 등 지역에서 수확한 생산물을 원료로 쓴 술의 경우 온라인 배달이 가능하고 세제 혜택 등 인센티브가 주어진다. 따라서 막걸리도 전통주에 포함될 경우 동일한 혜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쌀 가격이 주저앉고 1인당 쌀 소비량이 꾸준히 감소하는 상황에서 이러한 조치는 정책 일관성을 해친다는 지적이 나온다. 안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달 국정감사에서 “국산 쌀 소비를 확대하고, 국산 쌀을 사용해 전통주를 개발해온 영세업체들도 보호해야 하는데, 외국산 쌀을 쓰는 업체에 혜택을 배제한다고 해도 (전통주로 인정하는 것은) 결국 (국산 쌀 소비 촉진) 정부 정책 방향과는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특히 막걸리를 전통주로 편입하되 혜택은 제외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은 세계무역기구(WTO) 협정 위배 소지가 있다는 일각의 지적이 나왔다. 동일한 전통주 지위를 부여하면서 국산쌀 제조자와 수입쌀 제조자간 혜택에 차별을 둘 경우 WTO의 관세와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주요 조항인 ‘내국민대우원칙’에 어긋날 수 있다는 것이다.
제각각인 업계 목소리도 개정안 마련 지연 이유로 꼽힌다. 막걸리협회, 와인협회, 전통주협회 등 전통주를 둘러싼 이해당사자가 많아 의견 정리가 쉽지 않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막걸리 제조업체 브랜드를 전통주로 편입시킨다고 해도, 지금 지역특산주 만드는 업체들처럼 농업법인 만들어 생산하고 기타 온라인 배송하거나 전통주 세제 혜택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쌀 문제로 예민한 시기라 정부도 부담이 되는 상황일 것”이라면서 “올 정기국회 내에 개정안 준비를 마친다고 했지만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