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미국과 유럽은 다양한 시나리오와 워게임(war game)으로 이에 대비를 했다. 2016년 미국의 랜드(RAND) 연구소는 러시아가 에스토니아 등 러시아와 접경한 북유럽을 침공하는 데 대한 워게임을 진행했다. 유럽미래관측소(The European Futures Observatory)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경우, 러시아가 승전하는 경우와 패전하는 경우에 대한 워게임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미국의 백악관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다양한 시나리오와 워게임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영향을 전망하고 전쟁 시뮬레이션을 진행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미치는 영향이 커짐에 따라 미래 시나리오도 다양하게 등장했다. 전쟁 직전, 전쟁 직후, 전쟁 중, 최근까지 다양한 조직과 학자가 우크라이나 전쟁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이 시나리오들은 모두 러시아의 고전, 패전, 전쟁의 확산을 포함한다. 여기서 전쟁의 확산이란 나토와 러시아 간 전쟁, 제3차 세계대전 발발, 핵무기 사용을 포함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초기에 러시아가 고전하고 우크라이나가 선전할 것으로 기대하는 전망이 거의 없었다는 주장이 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미래 시나리오는 모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전개되었다.
미래 시나리오란 물리적 법칙, 역사적 경험과 인간의 심리 등으로 있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예측적 서술이다. 미래 시나리오는 시나리오 달성 조건, 시나리오의 전개(What If) 및 정책과 전략 점검, 대안 탐색으로 구성된다. 이를 통해 미래의 불확실성을 확인하고 현재의 정책과 전략을 점검하며 선호미래를 달성하는 방안을 탐색한다.
복수의 미래 시나리오는 불확실하며 가능성으로 열려 있는 미래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는 열린 토론과 대화가 가능해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나리오 방법론을 포함한 미래학이 더욱 발달한 이유다.
러시아가 고전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체계적이고 열려 있는 시나리오와 워게임의 부재에서 찾을 수 있다. 러시아는 미국과 나토의 군사원조, 우크라이나 국민의 저항 등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지 않았다. 상세한 시나리오는 도출하기 어려웠어도, 러시아의 고전과 패전에 대한 시나리오는 충분히 생각할 수 있었다. 미래 시나리오 준비 부재는 러시아가 전쟁 양상 변화에 대해 기민하게 대응하지 못하도록 했다.
권위주의 체제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둔 미래를 전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사회나 조직의 리더가 가리키는 방향만 바라보고 달려야 한다. 전문가와 구성원은 눈가리개를 한 경주마로 전락한다. 현재 러시아 군이 처한 위치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정부, 군사, 외교, 금융, 투자, 기업의 관점에서 다양한 조직이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했으며, 지금도 하고 있다. 상황변화에 대응하여 미래 시나리오를 수정하고 이에 따른 대안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지속적이고 기민한 미래예측(foresight)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시나리오가 해외 시나리오를 단순 소개하는 데 그치거나, 시나리오의 필수 구성요소의 하나인 시나리오 전개가 생략되었다. 아쉬운 지점이다. 그 이유로는 시나리오를 소개하는 지면의 한계로 상세한 시나리오 전개가 생략되지 않았을까 짐작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재 진행상태로 보아 시나리오는 크게 다섯 개로 나눌 수 있다. 이는 ‘단기간 내의 평화협정과 불안한 평화’, ‘전쟁의 느슨한 장기화와 느슨한 종전’, ‘전쟁의 장기화와 군사지출 증대로 인한 러시아 패전’, ‘소규모 핵전쟁으로 인한 전쟁 종료와 러시아에 대한 제재 강화’, ‘전쟁의 확전과 새로운 출발’이다. 이들 각 시나리오에 따라 국가자본주의 동향, 러시아와 중국의 연대 구조, 다극적 세계질서의 구조, 탈탄소 경제 동향 등에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들 시나리오는 수출주도형 국가이며 에너지 집약적 산업에 식량 및 에너지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끼치는 영향이 적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다. 외교, 국방, 산업, 재정에서 경제, 투자, 벤처, 농업에 이르기까지 미래 시나리오를 지속적으로 기민하게 탐색할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하다. 러시아의 실패가 반면교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