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프리즘] 위기 속에 변신한 포스코인터내셔널

입력 2022-10-21 05:00 수정 2022-10-2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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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용 한국가이드스타 상임이사

종합상사는 필자에게 선망의 직장이었다. 대학 때 읽은 ‘불모지대’ 덕분이었다. 주인공 ‘이키 다다시’는 못하는 게 없었고 가보지 않은 곳도 없었다. 이쑤시개부터 미사일까지 팔아야 하니 지식의 양도 엄청나 보였다. 수출 첨병으로 나라를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까지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해외랍시고 무더운 중동으로 나가는 건설회사 신입사원과는 격이 달라 보였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해외출장을 다니면서 만나 본 종합상사맨들은 그렇게 활기차 보이지 않았다. 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이 직접 무역업무에 뛰어들면서 수출창구로서의 독점적 지위를 잃게 됐다. 제품을 두루두루 알고 있어도 깊이는 모자랐던 상사맨들이라 실력의 부족도 통감했다. 어느 상사맨은 자신들의 지식수준을 “Something on everything”이라고 했다. 반면 제조업체는 “Everything on something”으로 불렀다. 출장이 많다 보니 사고도 많았다. 한 종합상사 기획실은 세계 어디선가 일어나는 비행기 사고가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희생자 명단에 상사맨 한둘쯤이 꼭 들어 있을 것 같아서였다. 2014년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미생’의 마지막 장면이었던 목숨을 건 추격전이 그렇게 실감 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가장 많은 해외 사무소와 주재원을 가지고 있던 포스코인터내셔널의 전신, 대우실업의 이야기다.

1967년 김우중 회장에 의해 설립된 대우실업은 19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 분해되자 2000년 대우인터내셔널로 분할됐다. 10여 년간의 워크아웃을 거쳐 2010년 포스코에 인수됐다. 당시 SK그룹도 대우가 확보한 자원에 관심이 많아 입찰을 준비했었으나 포기했다. 포스코가 지른 가격은 3조 원, SK는 1조 원 정도가 적절하다고 봤는데 몇 배를 써 버렸으니 놀랄 만도 했다.

높은 인수가 때문에 한때 대우인터내셔널은 포스코그룹의 미운 오리 새끼 신세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대우 시절부터 일찌감치 손댔던 자원개발 사업이 잭팟을 터뜨리며 이제는 효자가 됐다. 매출은 지난해 30조 원을 돌파해 포스코 그룹 전체의 40%에 육박했다. 코로나19의 여파에도 영업이익은 2020년 4744억 원, 지난해엔 5853억 원을 냈다. 특히 미얀마 가스전의 영업이익은 3000억 원을 넘어 회사 전체 영업이익의 절반을 넘게 차지했다. 인수합병(M&A)의 귀재라는 SK그룹도 자원의 무궁무진한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실패한 셈이다. 물론 비축된 자금으로 하이닉스를 품에 안기는 했지만.

1세대 종합상사맨들의 애환은 드라마 ‘미생’이 실감 나게 재현했다. ‘불모지대’에서도 깅키 종합상사를 중심으로 중동전쟁과 오일쇼크, 석유를 둘러싼 이권싸움, 미국 전투기 도입과정 등에서 상사맨의 치열한 삶을 보여주었다. 한마디로 빈틈없이 생각하고 일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종합상사의 수익모델은 트레이딩, 고객사와 제조사 간 중개를 통해 제품을 대신 팔고 마진을 남겨 수익을 낸다. 그런데 포스코인터내셔널이 트레이딩으로만 먹고살던 종합상사의 생존방식에 종언을 선언했다. 제조회사들이 자신만의 무역 역량을 키워냈고 글로벌 네트워크에 의존한 수익창출은 플랫폼의 시대에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고 본 듯하다. 그러나 트레이딩이라는 상사 본연의 경쟁력을 소멸시키지 않고 그대로 가져 가겠다고 했다. 이는 래미안으로 더 잘 알려진 제1호 종합상사 삼성물산, 그룹의 품을 떠난 현대종합상사와 LX인터내셔널, 네크워크형 판매조직으로 변신한 SK글로벌과의 차별적인 특징이다. 트레이딩이라는 고유의 강점을 신규 투자에 접목해 사업형 투자회사로 성장하겠다는 비전이다. 가스전 개발사업에서의 성공사례를 신규로 추진할 에너지, 곡물 사업으로 확산시켜 나가겠다 했다.

‘불모지대’를 보면 국익, 즉 나라의 이익은 종합상사의 중요한 경영 고려 사항이었다. 내각 정보조사실, 통산성과 종합상사 간에 일본이라는 나라의 이익을 위해 정보가 공유되고 특정 사업이 추진됐다. 포스코인터내셔널이 중점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자원과 곡물은 우리 경제의 취약지이기도 하다. 물론 ‘불모지대’에서와 같은 무모한 애국은 더 이상 취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러나 한 기업의 사업이 궁극적으로 우리나라의 발전에 이바지한다는 차원에서 보면 포스코인터내셔널은 종합상사 고유의 애국이라는 뿌리까지 지키는 셈이 된다. 국민기업인 포스코의 정체성과도 일치한다.

종합상사는 외환위기 당시 큰 구조조정을 겪었다. 트레이딩이라는 중개업 자체가 신용을 거래하는 것이라 부채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는데 이 업의 특성이 무시됐다. 그리고 빚이 많은 회사, 그룹의 부실을 초래한 장본인으로 억울하게 투영됐다. 그러나 포스코인터내셔널이라는 종합상사가 명운을 걸고 20년을 넘게 가져온 미얀마 가스전을 보면 그들의 피와 땀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이것이 세계 6대 무역 대국으로 성장한 원동력이었다.

트레이딩이라는 종합상사 본연의 업을 지켜가면서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해 온 포스코인터내셔널의 모습에서 위기에 강한 한국 경제의 미래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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