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서 카트 정리를 하던 그는 얼마 전 또 한번의 좌절을 겪었다. 카트를 정리하던 그에게, 고객이 카트를 건네지 않았다며 불친절하다고 민원을 제기, 사직을 권고받은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카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고객이 카트를 달라고 했고, 하던 일을 마저 한 뒤에 주려고 했는데 고객이 화를 내 당황했다고 한다. 멀티로 동시에 일을 처리하거나 융통성을 발휘하는 게 힘든 그의 증상을 모르기에 그의 반응이 엉뚱하게 보였을 수도 있고 이해하기 어려웠을 수도 없다.
그가 조현병 환자라는 걸 알았다면 사정은 달라졌을까? 오히려 사회적 위화감을 조성한다 해서 원성을 더 사지는 않았을까? 외환위기 때 부도로 돈도 가족도 모두 잃은 박모 씨는 조현병과 알코올 사용장애로 인한 정신장애 환자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멈춤 상태가 된다는 그는 업무처리가 늦다는 이유로 취업을 지속하기가 어려웠고 그 역시도 자신의 병을 탓해야 했다.
누구나 그러하듯 먹고사는 문제는 장애인에게도 매우 중요한 문제다. 비빌 언덕이 있어야 살아갈 궁리도 할 수 있다.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조현병 환자의 궁극적인 치료 목적도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한 인간으로서의 기능을 회복시켜주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기반이 마련되어야 함은 당연지사인데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경증이나 완치된 경우 직업선택에서 차별을 받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우리 현실은 발 붙이고 살아갈 자리, 비빌 수 있는 언덕이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김현주 서울 서대문구보건소 사회복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