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용어라며 쓰이는 말에도 지질함이 묻어있는 말들이 많다. 시대상황을 거치며 전문가와 기술관료 패밀리를 형성하고 유지하는 데 활용해온 말들이 있다. 법조용어가 대표적이다. 굳이 알아먹기 힘든 말글을 고수하는 까닭은 소통하기보다는 군림하려는 기득권 유지 속내가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말들이 보잘것없고 변변치 못한 이유는 온전히 소통하지 못하고 진실을 가리기 때문이다.
많은 용어들은 제도화하여 본질을 왜곡하거나 책임을 회피하기도 한다. ‘신재생에너지’라는 한국식 표현이 그러하다. 기후위기로 에너지 전환이 진행되며 검증한 재생가능에너지는 태양의 빛과 열, 바람과 물의 흐름, 지열과 바이오매스 등 지구 행성의 진화로 활용할 수 있는 에너지를 말하는데, 한국은 화석연료를 변형한 신에너지나 폐기물로부터 얻는 에너지를 재생에너지라며 신재생에너지로 분류한다. 급기야 원자력발전을 녹색 에너지라 주장한다. 우리가 그렇게 선언하고 안전에 연연하지 않는 기술관료 정신으로 생산에 매진하면 RE100(재생에너지 100%)으로 인정해준단 말인가. 식량위기 시대에 정부는 떨어지는 자급률의 수치를 자조율(해외 식량기지를 확보해 국내로 조달 수급할 수 있는 곡물까지 포함한)이라는 말로 올려보려 하기도 했다.
최근 쌀 생산과 소비가 불균형해 시장격리를 해야 한다는 논쟁이 한창이다. ‘쌀을 격리’한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사회적 격리를 하더니 쌀을 시장에서 격리한다니 무슨 일인가? 쌀 시장격리라는 말에도 본질보다는 닥친 문제만 해결하고 보자는 책임회피와 한반도 농업에 대한 안목 없음이 드러난다. 논농지가 줄어드는데도 국내 소비가 줄어 쌀값이 떨어지고 재고관리 비용이 문제라면 오히려 전환의 기회로 삼아 생산은 더욱 안정되고 건강하게 유기재배 확대와 탄소저감 농업으로 전환하고, 소비는 식생활 개선과 가공 확대, 북한과 국제 기아 해소 원조 확대 등으로 나아갈 수 있다. 문제의 본질을 드러내어 사회적 설득력을 얻고 식량주권을 확대해 갈 수 있는 기회를 시장격리라는 어색한 말로 눈가림하고 있다.
친환경농업이라는 말도 보편적이지 않은 한국식 표현이다. 증산을 위해 농약과 비료에 찌든 농산물과 땅을 건강하게 회복하려는 유기농운동을 제도화하며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와 육성정책이란 개혁을 이루었다. 하지만 개혁은 지속되지 못했고, 생산과 소비가 상품으로만 관리되는 어정쩡한 친환경농산물에 머물러 있다. 유기농업을 실천하는 농민과 이를 지지하는 소비자의 주체적 관계는 회복되지 못하고, 위임된 제도와 시장의 대상인 상품의 이해관계로 관리된다.
주권자에게 지질한 말의 대표는 근로자라는 표현이다. 그나마 깨어있는 시민들의 실천으로 노동자라는 역사적 계급성과 사회적 정체성을 담은 말을 세우기 위해 여전히 맞서 싸우고 있다. 마찬가지로 국가 제도에서는 농민이라는 말을 지운 지 오래다. 신자유주의 시장경쟁체제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한 이후 농사는 산업의 한 분야로 재편되고, 농산업에 종사하며 농산품을 생산하는 농업인으로 규정되었다. 역사문화를 일구어온 백성이라는 역사성, 자연과 사회에 다양한 공익 역할을 하는 사회주체라는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용어가 농업인이다. 농민이란 말이 바로서야 농업과 농촌이 산다.
말글을 바로 세워야 나라가 제대로 선다. 초라한 한글날 국가행사를 바라보며 몸과 마음이 제대로 서는 말글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