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이름 없는 전사들을 위하여

입력 2022-10-18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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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30일(현지시간) 사흘간 스페인 사라고사에서 제73회 세계신문협회(WAN-IFRA) 총회가 열렸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3년 만에 열린 이번 총회에는 전 세계 75개국, 700여 개 언론사에서 1200여 명이 참석했다. 국내에서는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이투데이를 비롯해 4개 매체가 다녀왔다.

총회 개막일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자유의 황금펜상(Golden Pen of Freedom 2022)’ 시상식이었다. 자유의 황금펜상은 WAN-IFRA가 매년 언론 자유 수호에 큰 공헌을 한 언론인에게 주는 상으로, 올해 수상 영예는 폴란드 일간지 ‘가제타비보르차(Gazeta Wyborcza)’에 돌아갔다.

1989년 5월 창간한 가제타비보르차는 폴란드 공산주의 정권의 탄압에 맞서 언론의 자유를 지키고, 비보르차재단을 설립해 동유럽 언론사들과 러시아에 침공당한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을 지원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이날 수상 소감에서 요아나 크로치크 가제타비보르차재단 이사장은 “정치, 경제적으로 독립된 미디어는 계속해서 시민들과 동료들에게 저널리즘의 공공 임무를 보여줘야 한다”며 “연대 없이는 자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시상식에는 특별히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참석해 가제타비보르차의 수상을 축하했다.

시상식이 끝난 후 알하페리아 궁전에서 열린 환영 리셉션에서는 전 세계에서 온 언론인들이 서로 어색하게 인사를 나누며 교제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리셉션 분위기가 화기애애하게 무르익어 가는데, 한쪽 구석에서 침울하게 모여 있는 이들이 있었다. 러시아 독립 언론사 기자들이었다. 그들과의 대화 주제는 당연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 그가 일으킨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국영 언론사가 아닌, 독립 언론사인 만큼 푸틴과 전쟁에 매우 적대적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은 자신들도 기자인데,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을 러시아 안팎에 당당하게 보도할 수 없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킨 장본인은 따로 있는데, 단지 러시아 국민이라는 이유로 전 세계인이 모인 국제 행사에서도 죄인처럼 주눅 들어 있는 그들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푸틴은 러시아 내 독립 언론사들에 재갈을 물렸다. 올 3월 러시아 의회는 러시아군 운용에 관한 허위 정보를 공개적으로 유포하면 최대 3년의 징역형에 처하고, 허위 정보가 중대한 결과를 초래할 경우에는 징역을 최대 15년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하는 형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법은 러시아군의 평판을 떨어뜨릴 목적의 공개 행동도 금지하고 있다. 이후 ‘입 바른’ 보도를 하면 언론인이든 대학생 기자든 가리지 않고 잡아가뒀다.

결국 러시아에 있는 글로벌 통신사와 독립 언론 매체는 자사 소속 언론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운영을 중단해야 했다. 하지만 사업을 계속하려는 언론사들은 내부 검열을 통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대한 보도는 사실상 금기시했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같은 소셜미디어가 차단됐음은 물론이다.

이런 심각한 상황에서 어렵게 WAN-IFRA 총회에 참석한 러시아 언론인들 손에 마이크를 들려주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우크라이나 상황은 연일 이어지는 보도로 접하고 있지만, 러시아 내에서는 이 전쟁의 실상을 제대로 알고 있는지가 더 궁금한 게 사실이다. 전 세계인, 그것도 기자들이 모인 자리였음에도 정작 러시아 내 실상을 세계에 폭로할 절호의 기회를 놓친 셈이다.

청중석에 앉아 우크라이나 언론인들을 지원한 공로로 올해 ‘자유의 황금펜상’을 수상한 가제타비보르차를 지켜봤을 러시아 독립 언론인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푸틴의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금세 백기를 들 줄 알았던 우크라이나의 예상 외 선전에 푸틴의 분풀이 수위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러시아 국영통신사 웹사이트는 한가하다. 러시아 쪽에 부정적인 뉴스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WAN-IFRA 총회가 끝나고 귀국해 문득 리셉션장에서 우울하게 있던 러시아 언론인들이 떠올랐다. 참석자 리스트를 검색해봤다. 전 세계 75개국, 700여 개 언론사에서 1200여 명이 참석했다는데, 러시아인 명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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