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구에 발 묶여 가격만 치솟아
IMF “최소 2007~08년 식량 비상사태 수준 위기”
WFP “전 세계, 현대사 가장 큰 식량 위기 직면”
15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최근 파키스탄 항구에는 음식을 실은 컨테이너 수천 개가 방치되기 시작했다. 대규모 홍수 피해를 본 파키스탄에서 정부가 외환 유출을 막기 위해 병아리콩을 비롯한 주요 식품의 수입을 보류한 탓이다.
세계 주요 밀 수입국 중 하나인 이집트에선 세관에서 밀이 통과하지 못하면서 빵 가격이 오르고 있다. 이집트 곡물산업협회는 “지난달 초 이후 지금까지 약 70만 톤 곡물이 항구에 남아 있다”며 “제분소의 약 80%가 밀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고 밝혔다.
아프리카 가나에서도 수입업체들이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식품 부족 사태가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대개 식품을 수입에 의존하는 국가들로, 치솟은 인플레이션과 강달러, 금리 인상 충격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통상적으로 수입품이 미국 달러로 표시되는 만큼 달러 지급 능력이 부족해진 국가들이 심각한 식량난을 겪고 있다.
대표적으로 가나의 경우 달러 대비 자국 통화 세디의 가치가 올해 들어 약 44% 하락했다. 이는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진한 성적이다. 자국 통화 가치가 반 토막 나면 수입 비용은 두 배가 된다. 샘슨 아사키 아윈고비트 가나수출입협회 사무총장은 “달러가 세디를 삼키고 있고 우린 절망적인 상황에 부닥쳤다”고 한탄했다.
여기에 우크라이나 전쟁까지 세계 식량 시스템을 흔들면서 부담은 커지고 있다. 블룸버그는 “국가들이 달러를 확보하지 못한다면 항구에 쌓인 식품들이 다른 목적지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보고서에서 현 상황이 과거 있었던 식량 비상사태만큼 심각한 재앙이라고 경고했다. IMF는 “현 위기는 심각한 식량 부족과 많은 사망을 촉발하고 사회·정치적 불안을 초래했던 2007~2008년 위기 때와 적어도 같은 수준”이라며 “식량 가격은 최근 몇 달간 하락하긴 했지만, 공급 병목 현상과 우크라이나 전쟁, 에너지 가격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이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세계식량계획(WFP)은 “전 세계가 현대사에 가장 큰 식량 위기에 직면했다”고 경종을 울리기도 했다. WFP에 따르면 82개국에서 3억4500만 명이 극심한 식량 불안 상태에 놓여있다. 이는 지난해 말 8200만 명에서 급증한 것이다. 또 아프가니스탄과 에티오피아, 남수단, 소말리아, 예멘에서 사상 최대인 97만 명의 사람들이 치명적인 기아에 직면해 있다. 이는 5년 전보다 10배 이상 많은 기록이다.
WFP는 “지금 조처하지 않으면 수백만 명의 기아 상태가 악화할 위험이 있다”며 “전 세계 사람들은 늘어나는 식량 불안에 기근과 이주 문제 등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