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의 빅스텝(한번에 0.5%포인트 금리인상)에 기업들이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당장 부담해야 할 이자 부담이 늘어난 데다 자금 조달 조건도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12일 한은은 이번 기준금리 인상으로 국내 기업들의 이자부담이 9조 원가량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8월 0.5% 수준이었던 기준금리가 1년여 만에 2.5%포인트(p) 오르면서 기업들이 부담해야 할 이자는 30조 원을 훌쩍 넘긴 상황이다.
이미 기업들의 자금 상황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기준금리가 3.0% 수준에서는 대기업의 59%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추정했다.
대기업보다 기초체력이 약한 중소기업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한은 경제통계시스템에 따르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금리는 지난 8월 신규 취급액 기준 4.65%로 가계 대출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 금리(4.34%) 보다 높다.
이런 상황에서 기업의 대출 규모는 크게 늘었다. 5대 은행(KB·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말 현재 기업대출(개인사업자 등 중소기업 대출 포함) 잔액은 694조8990억 원으로, 작년 말(635조8879억 원)보다 9.3%(59조111억 원)나 증가했다. 같은 기간 가계대출(709조529억 원→695조830억 원)은 13조9699억 원으로 줄었다.
늘어난 대출 규모와 이자만 문제가 아니다. 금리가 오르면서 기업들의 주요 자금 조달 창구인 회사채 시장도 꽁꽁 얼어붙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9월 회사채 발행 규모 5조3440억 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9월 발행액(8조4950억 원) 대비 37.1% 급감한 수치다. 올 1월(8조7710억 원) 대비해서는 39%(3조4270억 원)가량 줄었고, 전월 대비해서도 530억 원 감소했다.
회사채 수요예측 규모도 대폭 줄었다. 9월 회사채 수요예측 금액은 1조7480억 원으로 전년 동월(4조8950억 원) 대비 64.2%(3조1470억 원) 감소했다. 수요예측 참여율도 153.8%로 전년 동월보다 181.3%p 줄었다.
수요예측 미매각 건도 속속 나오고 있다. 지난달 회사채 수요예측은 AA등급 이상에서 1건, A등급에서 6건 발생했다. 전체 미매각률(전체 발행금액 대비 미매각금액)은 20.5%로 집계됐다.
현장에서도 어려움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시중 은행에서 기업금융을 담당하는 한 임원은 "건실한 중견기업도 최근 회사채 발행 시장에서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서 "높은 금리를 부담해도 목표금액을 달성하는 사례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라고 말했다.
실제 신용등급 BBB0 콘텐트리중앙은 지난 4일 250억 원 규모 회사채 수요예측에 나섰으나 80억 원 확보하는 데 그쳤다. 신용등급 AA-인 SK리츠는 지난달 960억 원 규모 회사채 발행에 나섰지만 50억 원을 모집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신용등급 AA0인 메리츠금융지주도 지난달 29일 3000억 원 규모 회사채 모집에서 절반에 못 미치는 1460억 원을 모집하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자금 조달 여건은 당분간 계속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금리 인상 기조가 연말까지 이어질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회사채 금리도 추가 상승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백윤민 교보증권 연구원은 “10월 금통위에서 0.5%p 인상을 할 수밖에 없었던 전제조건들이 11월에도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며 “연말까지 한국은행 기준금리가 3.50%로 인상되고 내년 1분기에 추가적인 기준금리 인상을 통해 최종적으로 3.75% 수준까지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