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월 바이든 정부가 출범한 직후 곧바로 수행한 전 정부적 차원의 작업은 행정명령을 통한 미국의 핵심 공급망 파악이었다. 6월에는 우선적으로 반도체, 배터리, 희소금속, 의약품 4개 핵심품목에 대한 공급망 취약성 100일 분석을 끝냈다. 올해 2월에는 국방, 보건, 정보통신기술, 에너지, 물류, 농산품 및 식품과 관련된 6개 주요 산업 분야의 공급망 실태 및 공급망 취약성에 대한 대응 조치를 담은 실태 보고서를 발간했다.
2021년이 미국의 자체적인 공급망 현황 검토의 해였다면, 2022년은 분야별로 실제적인 조치들이 취해진 해였다고 할 수 있다. 5월 블링컨 국무장관의 연설에서 강조된 미국의 3대 대중국 정책 기조는 ‘자체 역량 강화(invest)’, ‘연대(align)’, 그리고 ‘경쟁(compete)’이다. 이 틀에 맞춰 생각해보면 최근 잇따른 미국의 조치들은 ‘자체 역량 강화’와 ‘연대’에 초점이 맞춰졌다.
먼저 ‘자체 역량 강화’ 관점에서 지난해 검토했던 4가지 핵심 분야를 중심으로 공급망 안정화와 국내 산업육성을 위해, 반도체에서는 반도체 과학법, 배터리 및 희소금속과 관련해서는 인플레이션 감축법, 의약품과 관련해서는 바이오 행정명령을 모두 올해 8월 및 9월에 발효시켰다.
또한 위 조치들과 함께 ‘연대’ 관점에서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국들과의 협력에 관한 조치들도 다양하게 이뤄졌다. 대표적인 것이 올해 5월 미국 주도로 출범한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의 공급망 필러다. 향후 세부 협상에서 미국은 핵심품목에 대한 중국 의존도 줄이기와 공급망 안정화를 위한 논의를 이어나갈 것으로 보인다. 또한 희소금속과 희토류와 관련한 11개국의 모임인 핵심광물 안보파트너십(MSP: Minerals Security Partnership)도 6월 출범시켰고, 반도체와 관련된 논의를 위한 칩4(FAB4) 예비 회의도 9월 진행했다. 의약품 관련 구체적인 연대 움직임은 아직까지 없는 가운데 전략적으로 원료의약품(API) 강자인 인도를 끌어안는 새로운 협의체를 제시하거나 쿼드(QUAD)의 코로나 백신 관련 워킹그룹의 의제와 역할을 확대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현재 진행 중인 핵심품목을 중심으로 한 분야별 조치들의 강화가 완료되었다면, 향후에는 중국과의 ‘경쟁’을 염두에 둔 기능별 조치가 취해질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예를 들어, 수출통제, 외국인 투자심사, 아웃바운드 투자심사 등의 강화가 그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필자는 약 2주 전인 9월 15일 바이든 대통령이 서명한 외국인 투자심사를 강화하는 행정명령(EO 14083)에 주목한다.
이 조치는 두 가지 점에서 미국의 첨단기술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M&A) 시도를 막는 범위를 확대했다. 첫째, 지금 당장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첨단기술이 아니더라도 미래에 그러한 기술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면 앞으로는 심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둘째, 중국 기업이 아니더라도 ‘중국과 관계(third-party ties)가 있는’ 기업이 미국 기업에 대한 M&A 시도를 할 경우 심사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중국과의 관계를 설명함에 있어 일반적인 지분관계를 넘어서 ‘교역, 투자, 비경제적, 또는 기타 관계’라는 표현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을 외치며 그간 중국과 깊은 교역 관계를 맺어온 우리 기업들의 미국 기업에 대한 인수합병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직까지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지만 잠재적으로 인플레이션 감축법 이상으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는 시한폭탄과 같은 행정명령으로 보인다.
많은 전문가들이 미·중 경쟁은 20~30년 장기화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의 대중국 연설이나 각종 법안에서 알 수 있듯 미국 정부는 10년 내 승부를 내겠다는 전략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상하는 것 이상으로 더 빠르게, 더 강화된 대중국 조치들이 쏟아질 가능성이 있다. 우리에게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용납되지 않는 상황이다. 여기에 우리는 과연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