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뛰어넘은 기업부채…‘좀비기업’ 늘어난다=국제금융협회(IIF)의 ‘세계 부채(Global Debt)’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한국 비금융기업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은 116.8%였다. GDP보다 기업들이 진 빚이 많다는 얘기다. 기업 부채 비율 상승 속도는 조사 대상 36개국 중 베트남에 이어 두 번째로 빨랐다.
한국은행의 ‘2022년 2분기 기업경영분석 보고서’를 보면 외부감사 대상 기업 3148곳의 부채비율은 91.2%로, 1분기 88.1%보다 증가했다.
문제는 기업들이 져야 하는 이자 부담이 이제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이 세 차례 자이언트 스텝을 밟으면서, 한·미 금리 역전 차 확대를 우려한 한은이 내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빅 스텝(0.50%포인트 금리 인상)을 단행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좀비기업)이 속출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한계기업은 영업이익을 이자비용으로 나눈 이자보상배율이 1을 밑도는 취약 기업을 말한다. 지난해 외감법을 적용받는 비금융기업 중 한계기업 비중은 2823곳으로, 코로나19 이전인 2019년보다 23.7%(540곳)나 증가했다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도 있다.
기업들이 갚아야 할 빚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4분기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는 13조2602억 원에 달한다. 2023년과 2024년에는 각각 69조7720억 원, 72조9120억 원이나 된다.
이정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과거 이자보상배율 변동 요인은 수익성 악화에 따른 영향이 컸지만, 올해의 경우 수익성은 전년과 비슷하겠지만 차입비용 증가(이자율 상승)가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한다”고 설명했다.
◇나쁜 고리, 시스템 위기로 전이되나= 한계기업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면 기업 전반의 고용과 설비투자를 위축시키고, 한계기업의 왜곡된 이익 구조는 시장의 가격 경쟁 구조를 혼잡하게 만들어 정상기업의 수익성마저 악화시킨다.
기업의 위기는 금융 시스템 전반의 위기로 번질 공산이 크다. 기업이 어려워지면 그 충격은 가계로 전이되고, 기업에 돈을 빌려준 은행도 부실채권에 휘청일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자금이 우리 증시에서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유동성이 감소해 우리 주식시장마저 ‘좀비시장’으로 전락할 수 있다. 국가 부도 위험을 나타내는 지표인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도 일주일 새 70% 가까이 뛰면서 코로나19 초기 고점(56bp) 수준에 다가섰다.
금융당국은 이달 말 종료되는 코로나19 대출 만기를 최대 3년,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최대 1년 더 연장하기로 했다. 그간 당국이 6개월씩 일괄 연장해 왔던 점을 고려하면 기업이 직면한 위기가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또한 중소기업을 위한 ‘안심 고정금리 특별대출’도 신설했다. 최근 기업대출 금리가 가계대출 금리를 크게 앞서는 등 빠르게 오르는 데 따른 조치다.
일각에서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에 속도를 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우리 경제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서다.
김윤경 인천대 교수는 “한계기업은 정상기업의 인적, 물적 자원 활용을 제한하고 경제 효율성을 감소시켜 국가 경제의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며 “기업의 구조조정 속도를 높이고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도록 구조조정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금융권 관계자 역시 “코로나19 위기로 한계기업으로 내몰린 기업들이 많았는데, 저금리 정책이 한계기업을 연명시켰다”며 “금리 인상으로 한계기업 비율이 증가할 가능성이 커진 상황에서 한계기업 구조조정을 통해 전체 생산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