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400 장벽을 뚫었다. 치솟는 환율에 기업들은 비명을 지르고 있다. 원부자재 수입 비중이 높은 기업들은 심각한 경영난을, 대기업이나 은행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외화조달 비용을 걱정한다. 수출업체들도 웃지 못할 처지다. 고물가·고환율에 소비 위축 가능성 커 경기침체를 예고하는 불길한 징후가 세계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어서다.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기초 체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증시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마지노선으로 1450원대로 보고 있다. 전경련이 15개 증권사 리서치센터장들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전문가들은 향후 원·달러 환율 최고가를 평균 1422.7원으로 전망했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지난 10여 년간 상방 저항선 역할을 해온 1250원을 상향 돌파한 이후 의미 있는 저항선은 없는 상황이다”라며 “불안한 대외 여건으로 1450원에 근접한 수준으로 원·달러 환율이 상승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졌다”라고 진단했다.
원·달러 환율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기준금리 인상뿐 아니라 유럽 에너지 수급 문제, 중국 부동산 위기 심화와 코로나19 봉쇄, 미중 무역 갈등, 러-우 전쟁 장기화, 글로벌 공급망 훼손 등 복합적인 요인에 급등했다. 이같은 환경 요인이 해결되지 않고선 환율 안정화가 어렵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겨울철 유럽 천연가스 문제가 재차 불거진다고 하면 환경은 또 달라질 수 있어서 환율이 급격히 올라갈 수 있는 잠재적인 리스크가 있다”라고 분석했다.
일각에서는 원·달러 환율 1500원 돌파 가능성도 거론된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미 금리 역전과 중국의 수요 둔화 등으로 5개월 연속 적자인 무역적자가 더 확대되면 1500원을 돌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물가·고금리시대에 ‘환율 1400원’은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 경제에 하방 압력을 키운다. 수입품 가격이 오르고, 인플레이션을 잡기도 어려워진다. 소비자 물가가 오르면 가계의 소비지출 여력이 줄어든다. 여기에 한은이 기준금리를 높이면 1870조 원(2분기 기준)에 달하는 가계 부채 폭탄이 터져버릴 수 있다. 증시와 채권 시장이 모두 흔들리게 되고, 외국인 자금 이탈도 우려된다.
기업 측면에선 실적을 악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원자재가격 상승 등 환율로 인한 비용부담은 수출증가를 상쇄한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국내 기업들의 영업이익률은 7.1%로 작년 2분기(7.4%)보다 낮아졌고, 부채 비율은 91.2%로 작년 2분기(86.6%)보다 높아졌다.
고환율은 수입물가를 밀어 올려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복병이 될 수 있다. 9월 1~20일 무역수지는 41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25년 만의 6개월 연속 적자가 유력해 보인다. 경제계에서는 올해 무역수지 적자가 281억7000만 달러(약 39조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133억 달러 적자), 외환위기 직전 1996년(206억 달러 적자)을 웃도는 것이다. 1956년 관련 통계 집계 이래 최대 규모다.
경제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물가 상승 압력을 더 높이고 이는 기준금리 인상 등으로 이어져 경기 하강 속도를 올릴 수 있다고 우려한다. 환율 안정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외환당국은 외환시장 변동에 대한 미세조정 및 시장 안정화 대책을 통해 원화 가치의 추가 변동 확대를 억제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