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플레이션 피난처로 부동산 간접 투자 상품 ‘리츠(REITs·부동산투자회사)’를 찾은 투자자들도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불안정성이 커진 국내 증시에서 안정적인 수익을 찾아 나섰지만 부동산 시장이 시들해지자 하락세가 깊어지면서다. 전문가들은 글로벌 부동산 시장의 커플링(동조화) 경향이 강화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경고를 내놓고 있다.
2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오후 2시 기준 국내 증시 거래소에 상장된 리츠 중 시가총액 상위 10개 종목으로 구성된 지수인 ‘KRX 리츠 TOP 10 지수’는 9월 들어 1.68% 하락했다.
집계가 시작된 지난 5월 23일(1187.49) 부터 따지면 이날(1007.53)까지 15.2% 내린 수치다. 첫 달인 5월(1.4%) 이후 6월(-12.7%)과 7월(-4.48%) 연속 하락했다가 8월(2.14%) 반등하는듯 했으나 재차 낙폭을 키우고 있다. 부동산 상품인 리츠의 특성상 낮은 가격 변동성과 높은 배당 수익률이라는 장점으로 주가 하락기에도 안정적 수익이 가능하다는 설명이 무색한 모습이다.
KRX 리츠 TOP 10 지수에 포함된 신한서부티엔디리츠는 9월 들어 3.96% 내려 하락폭이 가장 컸다. 디앤디플랫폼리츠(-3.26)에 이어 코람코에너지리츠(-3.93%), SK리츠(-3.37), 롯데리츠(-1.38) 등도 내리고 있다. 이외에 미래에셋맵스리츠(-5.26), 코람코더원리츠(-6.12)도 하락세다.
리츠는 그간 물가인상분이 자산가치에 반영될 공산이 크다는 인식 아래 ‘인플레 피난처’로 주목받았으나, 최근 시장의 시각은 달라지는 추세다. 지난해 리츠 평균 배당 수익률은 6%초반대를 기록했으나 금리가 오르면서 최근 저축은행권의 1년 만기 예금 상품 금리가 연 4%대까지 치솟은 상태다. 상대적으로 위험자산인 리츠의 매력도가 낮아진 셈이다.
리츠의 청약경쟁률도 부진하다. KB스타리츠는 지난 15일부터 16일까지 일반청약에 나섰으나 최종 경쟁률은 2.06대 1에 그쳤다. 앞선 기관 수요예측 결과 26.19대1에 크게 못미쳤다.
부동산 시장이 하락세로 전환한 탓이 크다. 한국의 주택가격은 6월말 이후 하락세로 전환했다. 7년간 지속된 전국 주택종합 매매가격 상승 흐름은 지난해 9월을 기점으로 둔화세로 전환한 바 있다. 서울의 주택 종합 매매가격도 올해 초 대비 0.02% 하락했다.
정보현 NH투자증권 WM지원부 차장은 “현재 국내 주택 시장은 하락 국면 전환, 전세의 월세화, 거래량 급감으로 볼 수 있다”며 “하반기에는 하락폭 확대 가능성이 크고 지역별, 상품별로 하락폭의 차별화가 전개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부동산 하락세는 국내에서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국 주택가격도 1년 전과 비교하면 여전히 20% 높은 수준이긴 하나 전월 대비 상승폭은 3월 2.4%, 4월 1.2%, 6월 0.4%로 감소하는 추세다. 중국의 주택가격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고 독일과 뉴질랜드, 홍콩, 스웨덴 등도 하락세로 전환했다.
증권가에선 글로벌 부동산 시장이 글로벌 경기침체의 새로운 뇌관으로 떠오를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글로벌 금리의 동행성, 글로벌 부동산에 대한 대체 투자 확대 등으로 글로벌 주택시장이 같이 움직이는 경향이 강해진 만큼 주택 가격이 떨어지는 국가가 더 늘어날 수 있어서다.
특히 주택가격 하락이 동반된 경기 둔화는 지속성이 오래가는 만큼 자본시장에 치명적이다. 김효진 KB증권 연구원은 “하버드대 경제학자인 카르멘 라인하트(Carmen Reinhart)와 케네스 로고프(Kenneth Rogoff)에 따르면 주요 경기 침체 시기 주식의 평균 하락 기간은 3.4년이었던 데 비해 부동산의 평균 하락 기간은 6년으로 더 길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주택가격이 하락하는 국가가 확대되고 있는 만큼 경기 하방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며 “이미 부동산 가격 하락 조짐이 있는 만큼 다음 글로벌 경기 침체 기간은 2020년 팬데믹 충격 때만큼 짧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