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 유일증거가 진술뿐…대법, ‘피해자진술 신빙성’ 재차 확인

입력 2022-09-18 09:00 수정 2022-09-18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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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세 男, 채팅 어플 통해 만난 30세 女 성추행
공소사실 인정증거로 피해자진술이 유일한 상황
대법 “공소사실 뒷받침할 간접정황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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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사실을 인정할 증거로 사실상 피해자의 진술이 유일한 경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될 때 그 진술에 신빙성을 부여, 유죄 판단 근거가 되는 직접 증거로 삼는 대법원 판례 입장이 재차 확인됐다.

대법원 3부(주심 노정희 대법관)는 18일 70세 남성인 피고인 A 씨가 채팅 어플을 통해 알게 된 30세 여성 피해자 B 씨를 모텔에서 강제 추행한 사건에서 “진술의 신빙성을 배척하고 무죄로 판단한 원심 판결은 잘못이 있다”고 판단하고, 원심 판결을 파기·환송했다.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을 법원이 인정할 유일한 직접 증거가 피해자의 진술뿐인 상황에서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지 여부가 쟁점이 됐다.

1심은 ‘성인지 감수성’에 의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구체적이며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는 내용까지 진술한 점, 진술 내용이 객관적인 사정에 부합하는 점 등에 비춰 피해자의 진술은 신빙성이 높다”며 유죄로 판단해 피고인 A 씨에게 징역 1년 6월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하지만 2심은 기존 통념에 비춰볼 때 이례적인 사정들을 주된 이유로 들어 A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 법원은 A 씨와 B 씨가 40세의 연령 차이가 있고 일면식도 없던 사이인데, B 씨는 채팅 어플에서 나이 차이가 15세 이상일 경우 직접 대화가 불가능하자 63세의 ‘꽃이 핀다면’이라는 대화명으로 계정을 새로이 가입하면서까지 A 씨에게 먼저 연락을 시도했다고 지적했다.

또 B 씨는 모텔 안에서 A 씨한테 현금 50만 원을 받았고, B 씨는 모텔에서 강제추행 피해를 당했다고 하면서도 즉시 도움을 요청하거나 모텔을 빠져나오려는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B 씨는 모텔을 나서기 전 A 씨의 얼굴에 묻은 화장품, 립스틱 등을 닦아주고 모텔에서 나와서는 A 씨의 차량을 같이 타고 B 씨 차량이 주차된 장소로 돌아온 후 본인 차량을 운전해 귀가했다는 점 등을 들어 강제추행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반면, 대법원은 △피해자라도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기 전까지는 피해사실이 알려지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가해자와 종전의 관계를 계속 유지하는 경우도 적지 아니하고 △피해 상황에서도 가해자에 대한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기도 하며 △누구든지 일정 수준의 신체접촉을 용인했더라도 자신이 예상하거나 동의한 범위를 넘어서는 신체접촉을 거부할 수 있다고 원심 판단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특히 대법원은 성폭력 범죄의 특성상 피해 상황에서 명확한 판단이나 즉각적인 대응을 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이번 판결을 통해 성폭력 사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 판단 방법을 구체화해 정리‧제시함으로써 일반적인 사건에서의 진술 신빙성 판단 방법과 다르지 않다는 점을 확인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진술 내용이 논리와 경험칙에 비추어 합리적인지 여부는 개별적, 구체적인 사건에서 성폭력 피해자가 처해 있는 상황에 기초하여 판단해야 하고, 그러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아니한 채 통상의 성폭력 피해자라면 마땅히 보여야 할 반응을 상정해 두고 이러한 통념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섣불리 경험칙에 어긋난다거나 합리성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은 정의와 형평의 이념에 입각하여 논리와 경험의 법칙에 따른 증거 판단이라고 볼 수 없다”고 강조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런 법리를 이 사건에 구체적으로 적용해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할 수 있는 이유를 상세히 설시했다”면서 “향후 유사한 사건의 판단에서 하급심에 대한 지침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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