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표산업이자 최대 수출상품인 반도체 불황의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가격이 하락하고 수출이 줄면서 재고가 급증한다. 반도체 경기 후퇴가 본격화하고 있다는 지표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8월 반도체 수출이 7.8% 줄었다. 반도체 수출 감소는 2020년 5월 이후 26개월 만이다. 수출가격은 30.5%나 떨어졌다. 우리 주력 상품인 D램과 낸드플래시 메모리 국제가격이 각각 2개월, 3개월째 하락했다.(D램익스체인지 조사). 통계청 집계로 7월 국내 업체 반도체 재고가 1년 전에 비해 80% 증가했다.
메모리 반도체는 호·불황을 주기적으로 반복한다. 2018년 슈퍼사이클(대호황) 이후 잠시 부진했다가, 코로나19 사태로 PC, TV, 스마트폰 등의 수요가 큰 폭 늘면서 다시 호황이 이어졌다. 그러나 이제 글로벌 경기 침체로 이들 수요가 가라앉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국내 반도체 전문가 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6.7%의 응답자가 현재 우리 반도체산업이 ‘위기’ 단계라고 진단했다. ‘위기 직전’이라는 응답도 20%였다. 대부분 전문가들은 내년 이후에도 위기가 장기화할 것으로 비관했다. 미국과 중국의 치열한 공급망 경쟁, 중국의 급속한 기술 추격이 최대 리스크다. 중국이 특히 위협적이다. 최근 애플은 스마트폰에 들어갈 메모리의 신규 공급처로 중국 YMTC를 지정했다. 중국은 이제 우리와 기술격차가 1∼2년도 안 될 정도로 바짝 쫓아왔다.
전문가들은 반도체산업의 글로벌 분업구조에서 우리 역할과 영향력을 강화하는 것이 무엇보다 절실한 과제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칩4 동맹’ 참여와 적극적인 대응을 서둘러야 하고, 인력 양성, 연구개발(R&D) 강화, 투자에 대한 정책지원 확대 등의 강력하고 일관된 추진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반도체는 우리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최우선 전략산업이다. 반도체 위기는 한국 경제의 위기다. 경쟁국들은 현재와 미래 산업의 핵심인 반도체 육성에 총력전이다. 중국이 엄청난 자금을 쏟아붓는 ‘굴기’는 말할 것도 없고, 미국이 반도체산업육성법으로 520억 달러의 막대한 직접 지원과 시설투자 보조금, 파격적 세제 혜택에 나선다. 유럽연합(EU)도 2030년까지 생산점유율을 20%로 높인다는 목표로 대규모 자금지원 계획을 내놓았다.
윤석열 정부도 ‘반도체특별법’을 만들어 시설투자에 대규모 세금 감면을 해주고, 반도체 특화단지 조성, 첨단 분야 대학 정원 확대 등의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발의된 법안은 여당과 야당의 정쟁에 파묻혀 9월 정기국회 심사 대상에도 오르지 못한 채 발목이 잡혀 있다.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반도체산업의 근간이 흔들린다. 한시가 급한 심각한 상황인데 답답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