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의 개념과 그것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친숙한 항공사 마일리지부터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항공사 마일리지의 경우, 항공편을 이용하거나 혹은 항공 마일리지가 적립되는 카드를 사용하여 마일리지를 축적하고, 축적된 마일리지는 항공편 이용 이외에 패키지 여행상품 구매 등의 다른 용도로도 사용할 수 있지만, 아직 그 활용은 제한적이다. 또한 현금으로 마일리지를 구매할 수 있지만, 마일리지의 현금 전환은 불가능하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항공사 마일리지를 개인의 자산으로 볼 것인지 전 세계적인 논쟁이 있었고, 각국 법원은 각기 다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마찬가지로 온라인 게임을 즐기다 보면 경우에 따라서는 게임머니가 쌓이고,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구입하면 포인트가 적립된다. 그렇게 적립된 게임머니와 포인트는 현재는 해당 게임과 해당 쇼핑몰에서만 사용 가능하며 그 외의 사용은 매우 제한적이다. 또한 항공사 마일리지와 마찬가지로 현금을 지불하고 게임머니와 포인트 등을 살 수는 있지만, 포인트를 현금으로 교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항공사 마일리지와 달리 게임머니와 포인트가 서로 일정한 비율로 교환(페깅, pegging)된다면 어떨까? 가령 특정 게임을 즐기면서 적립한 게임머니(P2E)가 온라인 쇼핑몰의 포인트로 전환된다면, 굳이 현금으로 전환되지 않아도 물건 구입에 사용될 수 있다.
혹자는 특정 교환비율로 양사의 게임머니와 포인트가 통합 운영될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이 합병하여 마일리지 시스템을 통합 운영하듯이, 온라인 게임업체와 쇼핑몰이 합병한다면 양사 간 게임머니와 포인트 시스템 통합 운영이 가능해진다. 이러한 인수 합병은 가장 강력한 페깅의 한 예에 불과하지만, 양사의 게임머니와 포인트 페깅과 관련하여 ‘발권력에 대한 견제와 공조’라는 필요조건을 제시해 준다. 특정 교환비율로 서로의 게임머니와 포인트가 교환 가능해진다면, 양사는 각자의 게임머니나 포인트 발행량을 무한정 늘릴 유인이 생긴다. 이러한 발권력에 대한 통제 장치가 전제되지 않는다면 페깅협약은 이루어질 수 없다.
이러한 발권력에 대한 상호 견제장치로, 발권력을 기술적인 알고리즘에 이양하는 방식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한 회사가 임의로 발권량을 조절할 수 없도록 어떤 알고리즘이 정해주는 스케줄과 그 밖의 객관적인 여건에 따라 발권량이 결정되도록 하는 방식이다. 이를 위해 경우에 따라서는 공동으로 가상화폐를 만들 수도 있고, 외부의 가상화폐로 각사의 게임머니와 포인트를 페깅하는 형태도 가능하다. 이렇게 블록체인 기술을 매개로 게임머니와 포인트가 서로 페깅되면, 그리고 더 많은 더 다양한 업체들의 마일리지가 페깅되면, 이른바 가상화폐의 생태계가 조성된다. 이렇게 조성된 가상화폐의 생태계는 국경의 제한을 받지 않는다.
현실의 가상화폐 문제는 아직 이러한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았음에도, ‘쌀 때 사서 비쌀 때 팔겠다’는 차익거래의 수단으로 먼저 부각되었다는 점에 기인한다. 그리고 가상화폐를 둘러싼 세대 간의 갈등은 가까운 미래에 그러한 생태계가 조성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간과한 기성세대와 그러한 생태계가 곧 실현될 것이라는 섣부른 기대감에 차익거래에 나섰던 젊은 세대 간의 갈등이 본질이다.
가상화폐에 대한 교육은 성교육과도 흡사하다. 과거에는 성교육 자체를 터부시하였으나, 요즘은 청소년들이 너무 쾌락만을 추구하지 않고 올바른 성관념을 갖도록 하는 필수적인 교육으로 인식된다. 마찬가지로 자산투자에 눈 뜨는 2030 청년 세대들에게 가상화폐에 대한 투자 자체를 금기시할 것이 아니라, 현실의 가상화폐가 모두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현실의 가상화폐들 중 상당수는 생태계를 갖추지 못하고 도태될 것이라는 점을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가상화폐의 생태계에 대한 기성세대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