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자본잠식은 국내 상장 규정상 상장폐지대상에 해당한다. 자산보다 부채가 큰 상태를 완전자본잠식이라고 한다. 매년 수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적자가 쌓이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데 주주 몫이 하나도 안 남았다는 의미이니 상장폐지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미국 기업들은 이런 이유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것이 아니다. 많은 이익을 내지만 자기주식을 너무 많이 취득하다 보니 자본잠식에 빠진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상장할 때 1주당 1달러로 주식을 발행했는데 그동안 실적 증가에 비례해서 주가가 10달러까지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주식시장에서 회삿돈 10달러를 내고 주식을 매수한 후 자본감소로 회계처리 한다. 주식을 발행할 때 자본증가로 처리했으니 주식을 거두는 것은 반대로 자본감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 동안 돈이 생길 때마다 발행가액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많이 사 왔으니 자본잠식이 될 만도 하다.
자사주 취득을 통해 주식 수를 줄이면 주가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 순이익 대비 주가가 10배 정도로 형성되는 기업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순이익 100억 원일 때 시가총액은 1000억 원이라는 얘기이다. 시가총액 1000억 원은 주식 수 1000만 주와 1주당 주가 1만 원의 곱이다. 회사는 주식시장에서 1만 원의 가격으로 자사주 200만 주를 매입했다. 그러면 유통주식 수가 800만 주로 줄어든다. 이 상태에서 시가총액 1000억 원이 유지되려면 1주당 주가는 1만2500원이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자사주 취득은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
주택 개조 관련 기업 홈디포는 2021년에 영업활동을 통해 연간 165억7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1조 원 넘게 벌었다. 이 중 25억6600만 달러는 기계장치, 공구와 기구 등에 투자하느라 썼다.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유형자산에 대한 재투자를 차감하고 남은 돈을 가리켜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이라고 한다. 1년 동안 벌어들인 돈 중 남는 돈을 의미한다. 홈디포는 1년 동안 사업해서 140억500만 달러를 남겼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돈보다 훨씬 더 큰 148억900만 달러, 약 19조 원을 자사주 취득하는 데 썼다. 즉 번 돈에 가진 돈까지 합쳐서 주식을 산 셈이다. 한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매년 그런 식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오라클이나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도 비슷한 현금흐름이고 모두 자본잠식에 빠졌다.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를 위한 최고의 의사결정이다. 어차피 매년 영업활동을 통해 안정적으로 현금흐름이 창출되니 특별히 돈 떨어질 걱정은 없는데 사업 성격상 그렇게 성장성이 있지 않아서 주가가 쭉 오르기가 어렵다 보니 주가 부양을 할 수밖에 없다. 돈만 쌓아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단순 저평가 기업보다는 주주가치 제고 기업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주식 열풍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완전히 접고 미국 주식만 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늘었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을 환영하는 회사를 찾아가는 것이 맞다. 주주를 신경 쓰지 않거나 반가워하지도 않는 회사에 굳이 투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 완화에 따라 조금씩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있는데 속도를 보면 미국이 빠른 편이다. 물론 여러 대외변수가 영향을 주는 시점이지만 미국 주식에 관한 관심이 워낙 뜨겁다 보니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동할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므로 우리 기업들도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려 주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