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시장 속으로] 주주가치 제고에 진심인 미국기업의 교훈

입력 2022-08-17 19:05
  • 가장작게

  • 작게

  • 기본

  • 크게

  • 가장크게

박동흠 회계사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오너 중심이 아닌 주주를 위한 의사결정을 하는 미국 기업들의 연차보고서(10-K)들을 보다 보면 저절로 흐뭇한 미소가 든다. 왜냐하면, 미국 기업들 대다수가 정말 주주가치 제고에 진심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미국 기업들이 연간 번 돈 이상으로 배당금 지급과 자사주 취득에 돈을 쓴다. 특히 자사주 매입 규모가 상상을 초월한다. 심지어 매년 수십조 원씩 매입하는 바람에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진 기업들도 많다.

완전자본잠식은 국내 상장 규정상 상장폐지대상에 해당한다. 자산보다 부채가 큰 상태를 완전자본잠식이라고 한다. 매년 수익보다 비용이 더 많이 들어서 적자가 쌓이면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빠지는데 주주 몫이 하나도 안 남았다는 의미이니 상장폐지 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미국 기업들은 이런 이유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것이 아니다. 많은 이익을 내지만 자기주식을 너무 많이 취득하다 보니 자본잠식에 빠진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가 상장할 때 1주당 1달러로 주식을 발행했는데 그동안 실적 증가에 비례해서 주가가 10달러까지 올랐다고 가정해 보자. 회사는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기주식 취득을 결정했다. 주식시장에서 회삿돈 10달러를 내고 주식을 매수한 후 자본감소로 회계처리 한다. 주식을 발행할 때 자본증가로 처리했으니 주식을 거두는 것은 반대로 자본감소가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수십 년 동안 돈이 생길 때마다 발행가액보다 훨씬 비싼 가격으로 주식을 많이 사 왔으니 자본잠식이 될 만도 하다.

자사주 취득을 통해 주식 수를 줄이면 주가 상승에 큰 도움이 된다. 순이익 대비 주가가 10배 정도로 형성되는 기업이 있다고 예를 들어보자. 순이익 100억 원일 때 시가총액은 1000억 원이라는 얘기이다. 시가총액 1000억 원은 주식 수 1000만 주와 1주당 주가 1만 원의 곱이다. 회사는 주식시장에서 1만 원의 가격으로 자사주 200만 주를 매입했다. 그러면 유통주식 수가 800만 주로 줄어든다. 이 상태에서 시가총액 1000억 원이 유지되려면 1주당 주가는 1만2500원이 되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렇게 자사주 취득은 주가 상승을 견인한다.

주택 개조 관련 기업 홈디포는 2021년에 영업활동을 통해 연간 165억7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21조 원 넘게 벌었다. 이 중 25억6600만 달러는 기계장치, 공구와 기구 등에 투자하느라 썼다. 영업활동현금흐름에서 유형자산에 대한 재투자를 차감하고 남은 돈을 가리켜 잉여현금흐름(Free Cash flow)이라고 한다. 1년 동안 벌어들인 돈 중 남는 돈을 의미한다. 홈디포는 1년 동안 사업해서 140억500만 달러를 남겼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 돈보다 훨씬 더 큰 148억900만 달러, 약 19조 원을 자사주 취득하는 데 썼다. 즉 번 돈에 가진 돈까지 합쳐서 주식을 산 셈이다. 한 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매년 그런 식이다. 기업용 소프트웨어 전문기업인 오라클이나 담배회사 필립모리스도 비슷한 현금흐름이고 모두 자본잠식에 빠졌다.

이렇게 무리할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주주를 위한 최고의 의사결정이다. 어차피 매년 영업활동을 통해 안정적으로 현금흐름이 창출되니 특별히 돈 떨어질 걱정은 없는데 사업 성격상 그렇게 성장성이 있지 않아서 주가가 쭉 오르기가 어렵다 보니 주가 부양을 할 수밖에 없다. 돈만 쌓아 놓고 아무것도 안 하는 단순 저평가 기업보다는 주주가치 제고 기업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최근에 미국주식 열풍으로 국내 주식투자를 완전히 접고 미국 주식만 하는 투자자들이 많이 늘었다. 주주는 기업의 주인이기 때문에 당연히 자신을 환영하는 회사를 찾아가는 것이 맞다. 주주를 신경 쓰지 않거나 반가워하지도 않는 회사에 굳이 투자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인플레이션 우려 완화에 따라 조금씩 주식시장이 회복되고 있는데 속도를 보면 미국이 빠른 편이다. 물론 여러 대외변수가 영향을 주는 시점이지만 미국 주식에 관한 관심이 워낙 뜨겁다 보니 국내 주식투자자들이 미국으로 대거 이동할 수 있어서 우려스럽다. 그렇게 되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안 봐도 뻔하므로 우리 기업들도 이런 심각성을 인지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려 주기를 기대한다.

  • 좋아요0
  • 화나요0
  • 슬퍼요0
  • 추가취재 원해요0

주요 뉴스

  • 긁어 부스럼 만든 발언?…‘티아라 왕따설’ 다시 뜨거워진 이유 [해시태그]
  • 잠자던 내 카드 포인트, ‘어카운트인포’로 쉽게 조회하고 현금화까지 [경제한줌]
  • 단독 "한 번 뗄 때마다 수 백만원 수령 가능" 가짜 용종 보험사기 기승
  • 8만 달러 터치한 비트코인, 연내 '10만 달러'도 넘보나 [Bit코인]
  • 말라가는 국내 증시…개인ㆍ외인 자금 이탈에 속수무책
  • 환자복도 없던 우즈베크에 ‘한국식 병원’ 우뚝…“사람 살리는 병원” [르포]
  • 트럼프 시대 기대감 걷어내니...高환율·관세에 기업들 ‘벌벌’
  • 소문 무성하던 장현식, 4년 52억 원에 LG로…최원태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
  • 오늘의 상승종목

  • 11.11 장종료

실시간 암호화폐 시세

  • 종목
  • 현재가(원)
  • 변동률
    • 비트코인
    • 115,380,000
    • +5.18%
    • 이더리움
    • 4,446,000
    • +0.95%
    • 비트코인 캐시
    • 613,000
    • +0.74%
    • 리플
    • 815
    • -1.21%
    • 솔라나
    • 305,800
    • +7.37%
    • 에이다
    • 831
    • +0.48%
    • 이오스
    • 768
    • -2.91%
    • 트론
    • 231
    • +1.32%
    • 스텔라루멘
    • 153
    • +0%
    • 비트코인에스브이
    • 82,750
    • -0.18%
    • 체인링크
    • 19,590
    • -2.2%
    • 샌드박스
    • 405
    • +1.5%
* 24시간 변동률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