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동학 개미의 ‘허니문’은 없었다. 취임 후 100일간 코스피는 2% 뒷걸음질 치며 초라한 성적을 냈다. 커지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 압력 속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차례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에 나서면서 시장을 공포로 몰아넣었고, 장기화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사태, 기존 면역을 회피하는 성향을 보이는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의 하위계통(BA.2, BA.5) 확산 등은 시장에 부담을 줬다. 수출과 소비자심리지수 등도 경기 후퇴의 가능성을 내비쳤다. 대부분 경제지표에서 새 정부에 대한 기대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샤이 코스피…역대 정부 2번째 부진=16일 코스피는 2533.52로 마감했다. 윤 대통령의 취임 전날인 5월 9일 종가 2610.81 대비 2.96% 하락했다. 문민정부로 출범한 김영삼 대통령 이후 7차례 역대 정부 중 김대중 정부(-36.86%)를 제외하면 가장 부진한 성적으로 박근혜 정부(-1.46%)보다 낮은 상승률이다.
역대 정권 100일 코스피 성적표에서는 김영삼(12.98%), 이명박(7.88%), 노무현(3.89%), 문재인 정부(3.01%) 순으로 높았다.
물론 코스피의 부진이 현 정부의 경제 성적과 직결된다고 볼 수는 없다. 한국 증시는 외국인투자가 비중이 크고, 수출 중심의 산업구조를 반영하고 있어서 정부 정책 등 대내 요인보다는 대외 변수에 민감하다.
외환 위기 직후 출범한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 최악의 대외 환경이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다. 고물가·고환율·고금리 등 ‘삼중고’에다 최악의 인플레이션에 직면한 미국이 두 달 연속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를 한꺼번에 0.75% 포인트 올리는 것) 기준금리 인상을 단행하면서 실물과 금융시장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여기에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에서 ‘경제안보’라는 새로운 변수도 돌출했다.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국제유가가 여전히 고공행진하고 있고, 러시아에 대한 경제제재로 글로벌 공급망이 두 동강 나고 있다. 미·중 패권경쟁으로 한국의 ‘전략적 모호성’은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 중국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견제하는 동시에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 협의체인 이른바 ‘칩(Chip)4’에 한국이 참여를 검토하는 것에 대해 불편한 심정까지 표출한다.
이 때문에 IMF 외환 위기에 버금가는 ‘퍼펙트 스톰(초대형 복합 위기)’이 덮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오고 있다.
◇동학 개미의 바람 ‘불장’ 다시 지필까=미국과 대만을 제외한 주요 아시아 증시는 모두 상승했으나, 코스피만 이 흐름을 역행했다. 최근 100일 동안 닛케이225지수는 9.68%, 상하이종합지수 9.11%, 홍콩H지수는 0.89% 상승했으나 대만 가권지수는 3.91% 하락했다. 코스피(-2.96%)는 대만 때문에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
윤 대통령 취임 전날부터 이달 15일까지 미국 다우30산업평균지수(3만2245.70→3만3912.44)는 5.16%,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3991.24→4297.14) 8.46%, 나스닥지수(1만1623.25→1만3128.05)는 12.94% 상승했다. 아시아 주요 증시가 하락하거나 소폭 상승한 것과 달리 미국 3대 지수는 큰 폭으로 상승했다.
시장에서는 전형적인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에서 부진의 답을 찾는다.
윤 정부는 우리 증시를 살리겠다며 ‘자본시장 내 불법 행위 척결’에 초점을 맞춰왔다. 이복현 서울북부지검 부장검사를 금감원장에 앉힌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대검찰청과 금융위원회, 금감원, 한국거래소는 ‘불법 공매도 근절 대책 관련 합동 브리핑’까지 열면서 불법 공매도 경고에 나섰다. 브리핑의 골자는 불법 공매도 적발 시 패스트트랙을 활용해 검찰 등 수사당국으로 사건을 바로 이첩하고, 범죄수익과 은닉재산을 박탈하는 등 처벌을 강화하겠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유의미한 불법 공매도가 적발된 바 없다. 오롯이 “공매도 불법 행위 대책을 수립하라”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나온 정책이란 지적이 있다.
코스피 하락 주범으로 ‘반대매매’를 지목하며 완화조치를 시행했지만, ‘빚투(빚내서 주식 투자)’만 늘려놨다는 비판을 받는다.
물적분할시 반대 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주매청) 허용, 대주주 또는 임원의 주식 매도 시 사전 공시 등 일반 투자자 보호 정책도 한계로 지적된다. 한 재계 관계자는 “기업으로서 주매청은 자금 부담이 상당하다”며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을 틀어막는 방법보다 기업공개(IPO) 외에 기업의 자금 조달 통로를 열어주는 방향이 더 바람직하지 않겠나”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지금 증시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한국경제에 대한 자신감이다”면서 “기업의 자금 조달을 위한 숨통을 트고, 4차 산업혁명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자본 시장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