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저출생이 더욱 근심인 까닭은 정부 입장에서 보건대 ‘백약이 무효’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이 되어 범정부적 대책을 마련하겠다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한 이래, 정부는 육아휴직 확대, 보육기반 확충, 아동수당 지급 등 온갖 정책적 수단을 총동원하며 출생률 반전을 꾀하였으나 상황은 더욱 악화하였고 고착화하고 있다. 필자의 견해로는 윤석열 정부가 야심 차게 준비한 부모급여와 육아휴직 18개월 확대 역시 별다른 반전카드가 되기는 힘들어 보인다. 정부는 애가 타는데 정작 국민들은 별 감흥이 없다.
저출생은 국가 차원에서는 위기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2030 청년세대의 삶에서 보면 출산 기피는 지극히 합리적인 결정이다. 안정적인 직장과 주거가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결혼과 출산을 감행하는 것은 모험에 가깝다. 부모들이 자신들을 키우는 데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잘 알기에 스스로 부모 되기를 주저하는 것일 수도 있다. 청년들은 아이만 낳으면 사회가 함께 키워줄 것이라는 정부의 약속을 달콤한 악마의 속삭임으로 경계할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받게 되는 당장 얼마간의 지원금에 현혹되지 않으며, 평생 부모가 되어 어떠한 비용을 치르며 개인의 삶을 희생해야 하는지 냉철히 판단한다. 잘 교육받은 청년세대가 여러 환경과 조건을 따지며 자기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이렇게 출생을 둘러싼 국가와 국민의 입장이 정반대라면, 어떠한 접근이 필요할까? 정부의 입장을 관철시키며 국민을 설득하고 변화를 유도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은 정부 당국자가 코로나의 위험을 말하며 마스크를 써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우선 정부가 아이들을 낳는 당사자인 청년들의 입장에 깊이 공감하고 이들의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보며 해법을 모색해야 한다. 아이를 갖고자 하는 본능이 기꺼운 선택이 될 수 있도록, 출산과 양육지원에 더하여 다음의 두 정책 방향을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
첫째, 출생의 첫 관문인 결혼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난 학기 필자의 수업에 참여한 한 대학원생의 사례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수업을 진행하던 필자는 화면 너머 20대 초중반의 앳된 얼굴의 대학원생이 얼마 전 결혼했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라 일찍 결혼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조심스레 물어 보았더니 사정은 이러하였다. 사귀던 남자 친구가 있었고 결혼 생각은 있었으나 당장 여건이 되지는 않았다. 그러다 예비신혼부부로 아파트 특별공급 청약을 넣은 것이 운 좋게 당첨되어 결혼을 서두르게 되었다. 일정 기간 내 결혼을 해야 아파트 분양이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다른 여러 대학원생들도 그런 상황이라면 당장 결혼하겠다는 반응이었다. 안정적인 소득과 주거는 결혼의 전제조건이다. 청년들의 입장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정부가 응답할 차례이다.
둘째, 출생과 결혼의 연결고리를 느슨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가치관 변화가 가파르게 나타나고 있지만 유독 출생에 대해서는 결혼에 의한 정상가족의 규범이 강하게 작동되고 있다. 미혼모나 미혼부를 대하는 사회적 차별의 시선을 거두고 법적, 제도적으로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든 사람들이 기혼 부부와 동일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고쳐나가야 한다. 영국이나 스웨덴과 같은 서구 복지국가에서 결혼한 부모와 함께 사는 취학 아동의 비율은 잘해야 절반 정도에 불과하다. 이러한 나라들처럼 동거하는 커플이나 한 부모가 어려움 없이 아이를 낳아 기를 수 있도록 가족정책의 방향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