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에 올 때면 항상 웃는 얼굴에 가끔은 피곤할 때 마시라고 음료수도 하나씩 사주던 분이었는데, 폐암 진단 후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져 버렸다. 같이 들어온 남편의 얼굴에도 근심이 가득하다.
“요즘은 좀 어떠세요. 항암치료 중에 불편한 것은 없으세요?”
“네, 식욕이 없어진 것 말고는.”
“오늘은 어디가 아프셔서 오셨어요?”
“요즘 몸이 좀 피곤하더니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기침이 잘 낫지를 않아서요.”
“음, 폐렴이 생겼나 청진 좀 해 볼게요.”
진찰을 위해 주변을 아무리 찾아봐도 청진기가 보이질 않았다. 책상 서랍 속까지 뒤적거리는 내 모습을 멀뚱멀뚱 쳐다보던 아주머니가 내 목을 손으로 가리킨다. 요즘 건망증이 심해지는지 청진기를 목에 걸고 찾는 버릇이 있던 차에, 오늘 또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었다.
허둥대며 목에 걸린 청진기를 집어 진찰을 하는 내 모습을 보던 아주머니와 남편이 빙그레 웃는다. 몇 개월 만에 보는 두 분의 웃음이었다. 참 아이러니했다. 아무리 좋고 비싼 항암제도 그분들에게서 웃음을 빼앗아 갔는데, 아무것도 아닌 내 실수가 잃었던 웃음을 잠시나마 다시 찾아 줄 수 있었다니.
요즘은 웃음 치료가 많이 연구되어 암 환자나 만성질환자 그리고 심리적인 문제와 질환을 앓는 분들께도 이용된다고 하니, 가끔은 환자들을 위해 내 건망증이 재발하길 바라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물론 한 번의 웃음이 아주머니의 병세를 좋아지게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내 건망증적 행동에서 질병이 호전될 수 있는 작은 소망이 보일 수 있다니 기분이 좋아진다. 진료를 마치고 남편의 부축을 받으며 나가는 아주머니에게 “안녕히 가세요”라는 말 대신 “오늘처럼 많이 웃으세요”란 인사를 건넸다.
박관석 보령 신제일병원장·내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