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가 9일 사면심사위원회(심사위)를 열기로 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첫 특별사면으로 8ㆍ15 광복절 특별사면을 대규모로 추진 중인 가운데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이전 정부가 단행했던 '취임 첫 특별사면'과 맥락이 다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9일이나 10일 심사위를 개최해 광복절 특사 대상을 선정하는 작업에 착수한다. 심사위는 대개 2일 연속 열린다. 심사위가 사면 대상자를 심사해 선정하면 윤 대통령이 재가해 국무회의 의견을 거친다. 심사위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노공 차관 등 법무ㆍ검찰 내부 인사 4명과 외부 위원 5명 등 총 9명으로 꾸려진다. 12일께 사면 대상자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일반 형사범과 도로교통법 위반 과실범은 물론 이명박 전 대통령,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정ㆍ재계 인사도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전 대통령은 ‘다스 비자금 사건’으로 징역 17년을 확정받고 복역하다 건강상 이유로 지난달 형집행정지를 받고 일시 석방됐다. 야권 인사로는 이른바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징역 2년을 확정받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 사면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회장뿐 아니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등 경제계 인사도 유력하다.
이전 사례를 살펴보면 과거 정부는 대체로 정ㆍ재계 거물급 인사를 첫 번째 특사에 포함하지 않았다. 정권 초기에 논란이 될 만한 인사를 대상으로 특사를 진행할 경우 거센 비판을 받을 수 있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특히 경제인 사면에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첫 특별사면'보다 관심이 덜한 뒷순위에 배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첫해인 2003년 시국사범에 대한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북한공작원 '깐수' 정수일 씨, 문규현 신부 등이 포함됐다. 단병호 민주노총 위원장 등 1400여명은 석가탄신일 특별사면에서 사면ㆍ복권됐다.
'친기업 대통령'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이명박 전 대통령 역시 '취임 첫 사면' 당시 경제인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 전 대통령은 2008년 6월 4일 취임 100일을 맞아 150명 특별사면ㆍ감형, 운전면허 제재자 282만 명 특별감면을 단행했다. 이후 8ㆍ15특사에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ㆍ최태원 SK그룹 회장ㆍ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포함됐고, 2009년에는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 지원을 이유로 이건희 전 삼성그룹 회장만 '원포인트' 특별사면ㆍ복권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2014년 1월 취임 첫 사면을 단행했다. 정치권과 경제인을 포함하지 않고 서민 생계형 형사범ㆍ불우수형자 5925명을 대상으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각각 2015년과 2016년 특별사면을 받았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2017년 정봉주 전 의원ㆍ용산참사 관련자ㆍ일반 형사범ㆍ불우 수형자 등 6444명 특별사면ㆍ복권을 단행했다. 경제인은 포함되지 않았으나 'MB 저격수'라는 별명이 붙은 정 전 의원을 특별사면했다. 당시 야권은 "법치 파괴 사면, 코드 사면"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는 윤석열 정부 '첫 특별사면'이 과거 정부와 다른 양상으로 진행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과거에는 정권 초기 국정 동력을 키우고, 논란을 피하고자 유명 정치인과 경제인을 특사에 포함하지 않았다면 지금은 경제 악화 등 국내외 여건을 고려해 이전 정권보다 파격적인 특사가 단행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법무부가 사면 키워드로 '사회 통합'과 '경제 위기 극복'을 꼽았는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경제가 어려워졌고, 기업 역할이 중요하다는 공감대도 형성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비판이 나올 수 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 등이 유력 사면 대상자로 꼽히는 이유는 윤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6월 "20여 년 동안 수감 생활하게 하는 건 과거의 전례에 비춰 안 맞지 않나"라며 사면에 무게를 실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도 7월 경제인 사면과 관련해 "어느 정도 처벌 내지는 그러한 어려움을 충분히 겪었다고 판단되면 긍정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경제나 국민의 일반적 눈높이에서도 그렇게 어긋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서초동 한 변호사는 "사면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만큼 대통령 뜻이 정해졌다면 법무부가 따를 수밖에 없다"며 "정치 지형과 경제 환경 등을 고려할 때 큰 비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계산이 작용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