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외국인도 대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하는 내용의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을 추진할 예정이었으나 보류 됐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상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반 가능성 등으로 미국과의 통상 마찰을 배제할 수 없어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관계부처의 의견에 따른 것이다.
31일 정부부처에 따르면 공정위는 8월 초 공정거래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산업통상자원부, 외교부, 기획재정부와 개정안 내용 및 향후 추진 일정에 대한 협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시행령 개정안에는 외국인도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면 대기업집단 총수로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동일인 정의·요건 규정이 담길 것으로 알려졌다. 동일인은 기업집단을 사실상 지배하는 자연인(총수) 또는 법인으로, 대기업집단 규제를 적용받는 기업의 범위를 정하는 기준이 된다. 대기업집단 총수로 지정되면 대기업집단 지정을 위한 자료 제출과 공시 의무를 지고, 총수 일가 사익편취 규제도 적용받는다.
개정안 마련은 지난해부터 대기업집단에 진입한 쿠팡의 김범석 이사회 의장이 실질적인 지배주주임에도 미국 국적이란 이유로 동일인 지정을 피하면서 관련 규정을 손질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쿠팡을 비롯해 사우디아라비아 아람코의 자회사가 최대 주주인 에쓰오일, 미국계 제너럴모터스 그룹의 한국지엠 등도 동일인 지정 대상에 포함되게 된다.
그러나 산업부는 시행령 개정안이 한미 FTA 최혜국 대우 규정에 어긋나는지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공정위에 전달했다. 쿠팡은 지정되고, 에쓰오일 등은 총수가 지정되지 않는다면 최혜국 대우 조항 위배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앞서 미국 정부도 이런 부분에 대해 우려를 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산업부는 외국 자본 국내 투자 유치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재부 역시 공정위가 시행령 개정을 서두르기보다는 산업부·외교부 등과 사전 협의를 마친 후 입법 예고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부처 간 이견이 지속되면 공정위가 연말까지 목표한 시행령 개정 완료에 빨간불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러면 내년 5월 대기업집단 지정에서 외국인의 동일인 지정이 어려워진다.
윤석열 정부 국정과제인 동일인 친족 범위 축소 역시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공정위는 동일인 친족 범위를 현행 혈족 6촌·인척 4촌에서 혈족 4촌·인척 3촌으로 축소하고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는 사실혼 배우자는 새롭게 친족 범위에 추가하는 내용도 이번 시행령 개정안에 담을 예정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