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총액 2위 가상자산(암호화폐·코인) 이더리움의 ‘병합(Merge·머지)’ 업데이트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출범 초기부터 추진해온 지분증명(POS) 실현을 앞두면서, 코인 업계의 파장이 예상된다. 옆 동네 이더리움클래식(ETC·이클) 커뮤니티에선 채굴자들이 대부분 넘어올 것으로 예상하며 보안성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더리움의 현재 작업증명(POW) 방식을 고수하는 채굴자들이 새로운 코인을 만들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 경우 이더리움 투자자들은 ‘이더리움 네오 클래식’(가칭)을 추가로 받게 된다.
이클은 이더리움 채굴을 못 하게 된 채굴자들이 이클을 캘 것이란 전망에 가격이 수직 상승했다. 이클은 일주일간 73.4% 상승해 40달러(29일 오전 7시 30분 코인게코 기준)를 넘어섰다. 시가총액 100위 권 코인 중에서 가장 높은 상승률로 업데이트 당사자인 이더리움(13.8% 상승) 보다도 훨씬 높다.
이클 커뮤니티에서 이더리움의 병합을 기대하는 이유가 있다. 만약 채굴자들이 이더리움 채굴을 할 수 없다면 기기를 팔거나 다른 코인을 캐야한다. 채굴 인기가 떨어진 상태라 중고 기기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때문에 채굴자들은 이더리움 다음으로 채산성이 높은 코인을 찾아야 한다.
이클 투자자들은 수혜를 기대하고 있다. 이더리움과 설계 뿌리가 같은 만큼 기존 채굴기의 효율을 가장 잘 뽑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의 채굴 채산성 통계사이트 왓투마인에 따르면 이클의 채산성은 이더리움보다 높아졌다. 4~5위권이었던 순위가 단숨에 1위로 도약했다. 채굴 집중도를 나타내는 이클의 네트워크 전체 해시레이트는 24.35TH/s(테라 해시 속도, 28일 기준)를 기록하며 전월 대비 약 14% 상승했다.
이더리움 채굴자들이 이클 채굴이 아닌 독자적인 노선을 선택하는 것도 배제할 수 없다. 이더리움 병합 업데이트가 진행되면 기존 이더리움은 채굴을 할 수 없지만, 설계 수정을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
이더리움 재단은 9월 19일(예상) 이후로 채굴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를 계획 중이다. 업데이트가 이뤄지면 9월 중에 채굴이 되지 않는 시점이 온다.
그런데 만약 이더리움 채굴자들이 채굴을 종료한 업데이트를 하지 않고 버틴다면 이더리움은 지분증명(POS) 이더리움과 작업증명(POW) 이더리움 두 개 모두 남는다. 쉽게 말해 또 하나의 새로운 코인 ‘이더리움 네오 클래식’이 생기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기존 이더리움 보유자들은 이더리움이 이클과 분리될 때와 마찬가지로 신규 코인을 받을 수 있다.
이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는 이유는 이더리움이 이클과 분리 이후 많은 개선을 이뤘기 때문이다. 현재 이더리움을 수정해 쓰는 게 이클을 사용하는 것보다 나은 선택지일 수 있다. 다만 아직 채굴자들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다.
이더리움의 또 다른 하드포크코인(복제코인)이 생겨난다고 해서 이더리움의 지위를 뺏기란 쉽지 않다. 코인 시장은 복제가 허용되는 오픈소스 시스템이다. 누구라도 마음만 먹으면 비트코인이던 이더리움이던 시스템을 복제해 운영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더리움이 플랫폼으로서 성장하지 못했을 땐 그럴싸한 말이었다.
지금은 이더리움 플랫폼의 생태계가 거대해졌는데, 이더리움을 복제할 수 있을지언정 생태계 전체를 이전하기란 쉽지 않다.
이더리움을 복제해 새로운 플랫폼을 만든다면 안에서 운영되던 토큰들과 디앱(DApp)들도 똑같이 복제된다.
하지만 복제할 수 없는 게 스테이블코인이다. 투자자들은 이더리움과 이더리움 네오 클래식 코인을 새로 받을 수 있다.
반면 담보 가치와 1대1을 유지하는 스테이블코인은 플랫폼을 복제한다고 해도 새로 만든 플랫폼에서 두 배로 만들 수 없다. 따라서 복제된 시스템에서 스테이블코인의 가치는 0에 수렴한다.
당연히 스테이블코인이 연결된 디파이(DeFi·탈중앙화 금융)와 서비스들이 제대로 작동할 리 만무하다. 이더리움을 복제해 새 코인을 만들 수 있지만, 생태계를 가져갈 순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