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현로] 세제개편에 대통령의 국정철학이 필요한 이유

입력 2022-07-25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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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동 배재대 경영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이념에 따른 조세정책은 너무 뻔하다. 첫 회에 스포일러로 이미 결말이 노출된 15부작 드라마 같다. 보수진영은 무조건 감세하자고 한다. 반대로 진보 쪽은 닥치고 증세다. 양측 모두 전쟁에서 점령해야 하는 고지로 진격하는 모양새다. 시간이 지나도 똑같다. 이념과 조세정책 둘의 상관성이 낮거나 무관하다는 다른 나라 사례를 연구한 결과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다. 20년 후 들어설 정부가 어느 진영인지만 귀띔해 준다면 조세정책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이런 식의 행태는 부작위나 직무태만에 가깝다. 캐비닛 안에 모셔둔 먼지 쌓인 정책을 그저 돌려 꺼내기만 하는 꼴인 까닭이다. 우리가 처한 변화한 현실과 문제를 결코 개선할 수 없는데도 말이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주 법인세 인하, 종합부동산세와 주식양도세 및 상속세의 완화 등을 골자로 하는 대규모 감세안을 발표했다. 역시 예상대로다. 감세 외에는 눈에 띄는 내용은 별로 없다. 재정적자와 국가채무를 줄인다면서 세수는 대폭 줄이고 재정지출 개혁을 내세웠다. 벌써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재정지출 개혁은 모든 정권에서 마더소스쯤으로 여긴다. 써먹고 또 써먹는다. 그게 말처럼 쉬웠으면 지금쯤 개혁할 것도 남지 않았을 터다. 재정지출 개혁은 구두선에 지나지 않는다.

진보정권은 증세라는 당위에만 사로잡혀 국민의 사유재산을 침해하는 세금에 조심스럽지 않다. 채권자가 채무자로부터 돈 받아 가듯 한다. 세금을 부담하는 동시에 투표권을 가진 국민에게 이런 모습은 오만방자하게 보인다. 세금이 정말 더 필요한지 국고에 새는 곳은 없는지 살피고 최선을 다했음에도 돈이 더 필요하다고 해도 될까 말까다. 문재인 정부 때 그런 과정이 없었다. 국민 동의 없는 증세는 동티가 된다. 한때 20년 집권을 장담하던 더불어민주당이 불과 5년 만에 정권을 넘긴 이유 중 하나가 설득 없는 세금 탓이다.

원래부터 세금이 이래야 한다는 정답은 없다. 조세의 지도이념으로서 공평이나 중립성은 방향 제시와 테두리를 긋는 역할을 한다. 세법에 어떤 내용을 담을지는 구체적인 정책에 따른다. 조세정책은 사회를 바라보는 넓고 깊은 생각에서 나온다. 그 생각은 경제성장과 발전, 계층 간 소득 불평등, 인구감소, 복지국가 등 우리가 직면한 현안을 향한다. 국정의 최고책임자로서의 대통령은 넓고 깊은 식견이 있어야 한다. 전문가를 기용해서 권한만 위임하면 국정이 제대로 운영될 것이라 믿는 것은 큰 착각이다. 대통령이 국제법적으로 국가를 대표하는 국가원수의 지위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지 않나? 얼마 전 국무회의에서 스타 장관 출현을 주문한 윤 대통령의 생각은 그래서 우려스럽다.

저출산 문제를 보자. 이는 대한민국이라는 기업의 직원 수가 줄어드는 것과 같다. 일할 사람이 없는 회사는 망한다. 제대로 된 회사라면 떠나는 이직자들을 붙잡고 인터뷰해서 정확한 이직 원인을 찾아 앞으로의 회사 운영에 참고한다. 대학 1학년생들이 경영학원론의 인적자원관리 부문에서 배우는 내용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 인구감소가 일어나는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야 맞는 처방이 나온다. 지금까지 원인 파악도 대책 마련도 모두 실패했다. 애초부터 일개 부처에 맡겨 해결할 그런 사이즈가 아니었다. 저출산 대책은 범부처가 매달리고 조세제도를 세게 흔들어야 할 정도로 큰 판이다.

인구감소를 해결할 수단 중 하나가 복지국가 수립이다. 복지국가를 단순히 포퓰리즘으로 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복지국가를 향한 여정은 지난 20여 년간 방법과 정도에서 차이는 있지만 꾸준히 진행되어왔다. 진보정권만의 전유물도 아니다. 가깝게는 박근혜 정부가 한국형 복지국가를 내세울 정도였으니 말이다. 중요한 것은 프로파간다가 아니라 성과다. 복지국가로의 이행을 위한 핵심은 조세다. 대대적인 개편과 증세가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역진적 조세도 불가피하다. 그 과정에서 조세저항 역시 만만치 않을 것이다. 대통령이 확고한 국정철학에 터 잡아 관계부처가 매진하도록 독려하고 국회와 국민을 설득해야 할 시급한 상황에서 그냥 감세만 하겠다는 것은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말과 같다.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철학이 보이지 않는다는 비판을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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