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남미 ‘뉴 핑크 타이드’, 바이든 외교정책 걸림돌 되나

입력 2022-07-23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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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에 8월 첫 좌파 정권 들어서게 돼
10월 대선 앞둔 브라질도 ‘좌파’ 룰라 전 대통령 유력
중ㆍ러 견제해야 하는 바이든 고민 깊어지게 돼
과거 2000년대 ‘핑크 타이드’와는 다르다는 지적도

▲구스타보 페트로가 6월 19일(현지시간) 보고타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 앞에서 부인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보고타/AP뉴시스
▲구스타보 페트로가 6월 19일(현지시간) 보고타에서 대선에서 승리한 후 지지자들 앞에서 부인과 함께 손을 흔들고 있다. 보고타/AP뉴시스

남미 콜롬비아에 처음으로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중남미 주요국에 좌파 물결, 이른바 ‘핑크 타이드(Pink Tide·분홍 물결)’가 짙어지게 됐다. 일각에서는 중남미의 이러한 정세 변화가 미국의 외교정책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고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짚었다.

CNN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지난달 19일(현지시간) 좌파연합인 ‘역사적 조약’ 소속 구스타보 페트로 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50.44%를 득표해서 47.31%를 얻은 무소속 로돌포 에르난데스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콜롬비아 첫 좌파 대통령이 된 구스타보는 오는 8월 7일 대통령에 오르게 된다.

콜롬비아는 수십 년간 좌파 대통령이 없을 정도로 중남미에서도 가장 견고한 친미 보수 성향 국가로 꼽힌다. 페트로의 전임자인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이 올해 3월 미국을 방문했을 당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미주 대륙에서 콜롬비아는 핵심(Linchpin)”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좌파 출신 페트로 당선인이 콜롬비아 대통령직에 오르게 되면서 미국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그는 대선 후보 당시 CNN과의 인터뷰에서 “미국과 콜롬비아의 무역협정을 재협상할 계획”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특히 2020년 볼리비아에 이어 지난해 페루, 올해 1월 온두라스, 3월에는 남미 신자유주의 우등생’으로 꼽혔던 칠레에도 좌파 정권이 들어선 가운데 콜롬비아까지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되면서 남미에서 미국의 구심력은 한층 약화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뉴시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AP뉴시스

당장 베네수엘라에 대한 미국의 강경 기조도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은 그간 독재 체제를 구축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정책을 추진했고, 콜롬비아는 이를 강력히 지지해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콜롬비아가 더는 ‘베네수엘라 고립 정책’에 협력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닛케이는 외교 전문가 발언을 인용해 “좌파 출신 페트로 신임 대통령은 콜롬비아가 베네수엘라에 대한 공격의 발판으로 자국이 이용되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마두로 정권을 (정당한 정권)으로 승인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도 최근 보고서를 내고 이같은 우려를 제기하기도 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브라질리아/AP뉴시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이 12일(현지시간) 브라질리아에서 선거 유세를 하고 있다. 브라질리아/AP뉴시스

일각에서는 좌파 물결 ‘핑크 타이드’가 콜롬비아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오는 10월 대선을 앞둔 브라질에서도 좌파 성향인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시우바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룰라 전 대통령이 다시 정권을 잡게 된다면 중남미 7대 경제국 모두에 좌파 정권이 들어서게 된다.

핑크 타이드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중남미에서 온건 사회주의 성향의 좌파 세력이 득세한 것을 가리킨다. 폭력혁명을 추구하는 공산주의를 상징하는 ‘빨간색’이 아닌, 선거를 통한 온화한 사회주의 정책을 추구하는 정권이라는 의미에서 ‘핑크’라는 표현이 붙게 됐다.

▲조 바이든(맨 앞줄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6월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참석해 이반 두케(왼쪽) 콜롬비아 대통령과 마리오 압도(오른쪽) 파라과이 대통령 등 미주 정상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LA/AP뉴시스
▲조 바이든(맨 앞줄 가운데) 미국 대통령이 6월 10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참석해 이반 두케(왼쪽) 콜롬비아 대통령과 마리오 압도(오른쪽) 파라과이 대통령 등 미주 정상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LA/AP뉴시스

미국 외교정책은 이미 이러한 핑크 타이드의 영향을 받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달 미국 로스앤젤레스(LA)에서 열린 미주정상회의에 쿠바와 베네수엘라, 니카라과를 초청하지 않았다. 이에 멕시코 정부가 “모든 나라가 초대돼야 한다”며 출석을 거부했다. 이에 온두라스와 볼리비아 등도 출석 거부에 동참했고, 결국 미주기구(OAS) 35개 회원국 중 23개국 정상만 회의에 참석했다.

다만 지금의 좌파 물결이 과거 핑크 타이드와 같다고 봐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 진보성향의 싱크탱크 정책연구소(IPS)는 최근의 중남미 좌파 물결을 ‘뉴 핑크 타이드’, ‘제2의 핑크 타이드’로 정의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과거 핑크 타이드가 자원민족주의를 앞세워 에너지 산업의 국유화 등으로 중남미 정치적·경제적 불안정을 가중시키고 강경 반미 노선을 취했다면, 현재 좌파 정부들은 에너지 전환을 통한 기후변화 대응과 녹색성장, 빈곤 해결을 위한 재분배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이들 국가가 좌파 정권이 들어섰다고 해서 반드시 반미 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니며 ‘우호적인 동등한 지위’를 추구하고 있다고 닛케이는 설명했다.

이에 중남미 좌파 정권의 탄생으로 미주 일대의 지정학적 변화가 있을 것으로 전망되지만, 과거의 ‘핑크 타이드’와는 다른 존재감을 발휘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에 앞으로 ‘뉴 핑크 타이드’에 대한 미국의 대처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지게 됐다. 특히 중국의 영향력 증가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전 세계가 사실상 신냉전 구도에 접어든 상황에서 중남미에 대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해졌다고 닛케이는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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