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우리나라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을 준비하기 위해 필자가 프랑스 파리 소재 OECD에서 근무할 때이다. 대한민국이 OECD에 가입하는 것은 경제적 의미를 넘어 안보적 중요성도 크다고 사무국 관계자가 강조했다. 유럽이 2차대전 후 역내 경제공동체(EC)를 구성한 것도 소련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함이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만으로 효과적 대응이 어려워 경제공동체를 통한 억제를 한다는 것이다. 군사적 위협도 경제 동맹으로 대응한다는 OECD 관계자 설명에 매우 감명을 받았다. 서구 선진국은 오래전부터 전통 외교 영역을 경제와 안보로 확대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1985년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지리적으로 FTA 체결 필요성이 크지 않은 미국은 중동에 교두보를 구축하고 안보위협에 이스라엘과 공동 대처하는 모습이다. 경제와 외교와 안보를 한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루는 시대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최근 NATO에 참석하여 여러 나라 정상들과 교류를 갖는 것은 군사, 외교, 안보, 통상, 경제가 맞물려 돌아가는 국제사회 흐름에 부합하는 것이며 오히려 늦은 감이 있다.
역대 대통령 재임 중에 통상, 외교, 안보 분야에 수많은 과제가 제기됐다. 험난한 협정 과정이나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중인 1999년 사상 처음으로 한·칠레 FTA를 추진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한미 FTA를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한중 FTA를 시작해 박근혜 정부에서 마무리했다. 피해가 컸던 농어업 분야에서 통상협상에 반대가 많았고 갈등도 심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상(UR)부터, 쌀 협상, 한중 마늘 협상, 한미 광우병 쇠고기 협상, 한미FTA 협상 등 쉽게 넘어간 것이 없었다. 장차관이 경질되거나 공직자가 문책되는 아픔도 있었다. 아태지역의 메가 자유무역 협정인 포괄적 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은 공식 시작도 하지 못했다. 농어업분야 반대가 심하고 정권교체에 따른 지체도 있었다.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 워크(IPEF) 등 새로운 통상 어젠다가 줄줄이 다가온다.
세 가지 큰 목표를 설정하고 세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첫째, 당면한 글로벌 통상 어젠다는 경제적 측면보다 안보나 국가 전략적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 CPTPP, 쿼드(QUAD) 플러스, 오커스(AUKUS), IPEF 등은 중국의 확장을 견제하는 자유민주 진영의 공동 대응체 성격이 강하다. 당면한 통상현안을 우리 민족의 생존과 미래가 달린 국가전략이라는 목표로 다뤄야 한다.
둘째, 대한민국 대통령의 글로벌 리더 역할을 강화하는 데 초점을 둬야 한다. 팬데믹 위기, 식량 위기, 전쟁 위기 등 최근의 ‘복합위기’ 상황에 우리 대통령의 역할 공간이 많고 충분한 역량도 갖추고 있다. 응고지(Ngozi)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도 세계는 ‘다중위기(polycrisis)’ 시대라고 하면서 글로벌 연대와 협력을 강조한다. 세계적 과제인 식량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 우리의 식량자급 ‘성공 스토리’가 큰 도움이 될 것이며, 연간 5만 톤의 쌀을 원조하고 있다. 이제 우리 활동공간을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로 넓히고 이를 대통령이 주도해야 한다. 필자가 농촌진흥청장 재임 시 대륙을 아우르는 청장급 농업기술협력협의체(KOPIA, Korea Program on International Agriculture)를 구성했다. 2009년 6개국으로 시작한 협의체는 현재 3개 대륙 22개 국가가 참여하는 글로벌 농업기술협력체가 됐다. 아시아 13국은 ‘AFACI’, 아프리카 23개국은 ‘KAFACI’, 중남미 12국은 ‘KOLFACI’로 기후변화 대응, 병해충 방제, 품종 개발, 유전 자원 개발, 식량 위기 대응 등 많은 일은 추진한다. 농촌 진흥청이 추진하는 해외농업기술개발 사업은 지난해 OECD가 선정하는 ‘국경을 초월하는 공공 부문 혁신우수 사례’로 선정됐다.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대륙의 정상들을 초청해 글로벌 어젠다를 주도할 시기이다.
셋째. 당면한 어젠다에 여야나 진영, 이념대립을 벗어나야 한다. 한미 FTA를 시작한 노무현 대통령이 역사적 평가를 받는 이유는 “한미 FTA가 한국 경제발전에 긴요하다”는 노무현 대통령의 인식이다. 다가오는 글로벌 어젠다에 범부처 협력과 전략적 대응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