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뢰더 총리는 망가지는 독일 경제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결국 개혁의 카드를 빼 들었다. 이것이 바로 2002년 단행된 ‘하르츠개혁’과 ‘어젠다 2010’이다. 이들 개혁정책은 경직된 노동시장과 방만한 복지체계에 메스를 가함으로써 침체에 빠진 독일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다면 하르츠개혁의 성공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독일노총(DGB)의 변화와 사회적 압력을 첫째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하르츠개혁은 신자유주의적인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이어서 복지와 분배, 고용안정 등 케인스주의 정책을 최고 가치로 여기던 독일 노동계의 노선과는 배치됐다. 하지만 독일노총은 위기에 처한 국가 경제를 살려야 한다는 국민적 압력에 자신들의 노선을 포기하고 노동개혁을 선택했다. 당시 독일 사회에서는 노조의 경직된 노동운동이 ‘독일병’을 초래했다는 비판 여론이 들끓었기 때문이다. 경제위기 상황에도 불구하고 각종 불법 파업을 주도하며 산업현장의 성장동력을 갉아먹는다는 국민적 비판에 직면한 현재 우리나라의 민주노총과 비슷한 처지였다. 필자가 2004년 독일을 방문했을 때 만난 독일노총 관계자는 하르츠개혁 수용 배경에 대해 “학계, 언론계, 정치권 등 여론주도층을 비롯, 국민 모두가 독일 경제 추락의 책임을 노동계에 떠넘기는 상황에서 개혁정책을 반대하기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결국 노조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노동계의 자세 변화를 이끌며 하르츠개혁을 성공시킨 원동력이 된 셈이다. 고용노동부가 추진 중인 주52시간제 유연화 방안에 대해 “과로사회를 앞당길 것”이란 주장을 펼치며 반발하고 있는 우리나라 민주노총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실사구시적인 하르츠위원회 구성도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하르츠위원회는 폭스바겐의 이사로 근무했던 피터 하르츠를 위원장으로 앉혔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기업 임원 출신을 위원장에 임명한 것부터 파격이다. 개혁정책을 펴기 위해선 현장에서 오랜 경험을 쌓은 경영전문가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임명이다. 우리나라에서 노동 관련 위원회 책임자로 기업 임원 출신을 임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위원회 멤버 구성은 더 흥미롭다. 모두 16명으로 짜인 위원회에는 재계 6명, 노동계 2명, 정계 3명, 학자 3명, 기타 2명(수공업자 조합사무국장과 전략컨설턴트) 등으로 재계 위원이 노동계 위원보다 3배나 많다.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명분과 구색 맞추기를 먼저 생각하는 우리나라에선 노동계와 경영계의 숫자를 달리하는 위원회 구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하르츠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또 다른 요인은 국가지도자의 리더십이다. 개혁은 국민적 저항을 수반하고 정치적 손실이 뒤따르는 인기 없는 작업이지만 슈뢰더는 이를 감수하고 국가 경제를 살린다는 일념으로 하르츠개혁을 밀어붙였다. 슈뢰더의 통 큰 리더십은 소속 정당인 사민당의 지지율 하락으로 이어져 기민당의 앙겔라 메르켈에게 총리 자리를 내주는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그의 개혁은 메르켈 총리가 만성적인 ‘독일병’을 극복하고 독일 경제 부흥을 이끄는 발판을 마련했다.
윤석열 정부도 노동개혁이란 이름으로 주52시간제 개편을 추진 중이다. 선진국에서 보편화한 파업 중 대체근로 허용, 작업장 점거 금지, 노동시장 유연화 등은 아예 말도 못 꺼내고 있다. 막강한 권력을 자랑하는 민주노총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노동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선 노동계 내부의 혁신과 함께 노동계의 변화를 요구하는 사회적 압력이 필요하다. 또한 좌파, 우파 학자들을 적당히 얼버무린 구색 맞추기식 개혁위원회보다 소신 있는 전문가 중심의 실사구시적 위원회 구성, 그리고 국가지도자의 진정성 있는 개혁 의지가 뒷받침될 때 노동개혁의 성공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