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예과 첫 수업에서 들은 탓인지, 그 후로 이 ‘적응’이라는 말은 내 인생 표어 중 하나가 되었다.
첫 해부학 실습 날, 조교의 지시에 따라 덮개를 열고 시신을 마주하고, 놀랄 새도 없이 각자 정신없이 피부를 벗기는 작업을 하였다. 피부를 벗겨내자 그 밑에 노란 피하지방이 드러났다. ‘마치 식어서 굳어버린 카레 같네’라는 느낌이 들었다. 그날 이후로 한동안 카레를 보면 손을 대지 못했다. 그런데 얼마가 지났을까? 다시 좋아하던 그 음식을 찾게 되었다. 게다가 수개월이 지나자, 밤 10시까지 진행되던 해부학 실습에 허기를 느낀 나와 동기들은 과자를 가지고 와서, 몰래 나누어 먹으면서 열심히 시신을 해체해 나가기까지 하였다.
수년 전 요새같이 아주 무더웠던 7월 중순에, 별안간 진료실 에어컨이 고장 나는 일이 발생하였는데, AS가 밀려서 2주 정도 지나야 수리가 될 수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원체 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2주간 진료를 중지하고, 휴가나 갔다 올까’ 하는 생각이 간절히 들었다. 그러나 현실은 목구멍이 포도청인지라, 진료를 계속해 나갈 수밖에 없었다. 첫날은 사우나 속에 상담실을 차렸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땀이 계속 흘러 수건을 바꿔 가며 상담을 하는데, 환자분들의 대화에 집중이 안 되고 건성으로 “예…, 예…” 하는 지경이었다. 그런데 한 사나흘쯤 지나니 어느 정도 대화에 집중이 돼가는 것을 느꼈다. 연신 내리는 땀의 불쾌함도 조금씩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일주일쯤 지나니 진료가 한결 수월해지면서, 결국 2주간의 찜통 진료를 거뜬히 마치게 되었다.
“점장님이 저보고, 왜 아직도 이렇게 어리바리하냐고 맨날 지적하세요! 그냥 오늘 당장 때려치우고 싶어요!”
입사 한 달 차인 그녀는 눈물이 맺힌 눈을 들어 동의를 구하듯이 나를 쳐다보았다.
“서당 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속담이 있어요. ‘첫술에 배부르랴’라는 말도 있고요.”
어르고 달래서, 그녀가 계속 일을 하도록 격려를 하였다.
“이젠 눈 감고도 할 정도예요. 점장님도 저보고 오래 있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한 반년쯤 지난 후, 그녀는 밝은 미소를 품으며 진료실에 앉아 있었다.
“만약 그때 그만두었다면, 나는 이 일에 소질이 없는 사람이라고 단정 지었겠지요.”
자신감에 찬 그녀의 표정에, 나는 편안한 미소로 화답하였다.최영훈 닥터최의연세마음상담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