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놈들이 어디서 왔을까 고개를 갸웃했는데 알고 보니 작은방 창의 방충망이 약간 열려 있었다. 그렇다면 아파트 9층까지 비행해 떼로 침투했다는 말인가. 평소에는 사람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현관문이 열릴 때 들어올 것이다. 어린 시절 단독주택에 살 때는 오히려 파리가 더 많았던 것 같은데 지금은 구경하기도 어려우니 사람을 향한 집착력은 모기가 월등한 것 같다.
파리는 덩치가 커 눈에 잘 띄므로 엘리베이터에 동승하기도 어렵고, 사람이 아니라 사람이 먹는 음식이 표적이므로 굳이 고층 아파트가 아니라도 음식물쓰레기장 등 갈 곳이 많다. 반면 동물의 피를 먹어야만 알을 만들고 낳을 에너지를 얻는 모기로서는 도시에서 사람을 포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모기는 먹이(피)를 담고 있는 사람을 추적하는 놀라운 능력을 진화시킨 덕분에 아파트 숲에서도 살아남았다는 말이다.
모기가 어떻게 사람의 존재를 알아차리는가에 대해 많은 연구가 진행됐고 그 결과 날숨에 섞여 있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모기는 공기에 실려 오는 이산화탄소의 농도 변화를 파악해 30미터 넘게 떨어져 있는 발생원, 즉 사람의 존재를 추측하고 비행 방향을 잡는다. 9층이면 25미터 내외이므로 사정권 안이다.
이산화탄소 다음으로 중요한 실마리는 땀 냄새로 땀에 들어있는 젖산, 암모니아, 아민, 카복시산, 케톤, 알데하이드 등을 감지한다. 땀 냄새 성분의 다수는 인체 세포가 아니라 피부에 사는 미생물이 만든다. 비슷하게 땀을 흘려도 이런 냄새의 농도가 높은 사람에게 모기가 꼬이기 쉽다.
그런데 최근 모기가 또 다른 실마리를 써서 올바른 표적을 찾을 확률을 높인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월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는 이산화탄소를 감지해 표적을 찾아 나선 모기가 흰색 대상과 함께 있을 때 빨간색이나 주황색, 검은색 대상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보라색이나 파란색, 녹색에 대해서는 이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사람의 피부는 인종에 따라 옅은 주황색에서 짙은 적갈색이므로 모기가 좋아하는 범위에 들어간다. 한편 이산화탄소가 없을 때는 색에 대한 이런 선호도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즉 먹이라는 인식이 있을 때만 붉거나 검은 계열인 대상을 쫓는다는 말이다.
지난달 학술지 ‘셀’에는 사람 땀 냄새를 쫓는 모기의 습성을 이용해 감염력을 높이려는 바이러스의 전략을 밝힌 연구 결과가 실렸다. 우리나라에서는 모기에 물려도 물린 자기가 가렵고 빨갛게 부푼 상처가 며칠 가는 정도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사실 모기는 흡혈 과정에서 다양한 미생물을 옮기는 운반체 역할을 한다.
이 가운데 가장 악명 높은 병원체가 말라리아원충으로 지금도 매년 60만여 명이 말라리아로 목숨을 잃는다. 매년 4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댕기열의 원인 바이러스나 수년 전 중남미에서 소두증 신생아 공포를 불러일으켰던 지카 바이러스 역시 모기가 매개충이다. 그런데 최근 이들 바이러스가 감염된 사람의 체취를 변화시켜 모기가 더 끌리게 만든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찾아온 모기가 흡혈할 때 핏속의 바이러스가 옮겨간 뒤 모기가 다음 사람의 피를 빨 때 감염시키는 전략이다.
이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땀 냄새 성분 가운데 아세토페논의 농도가 올라가고 그 결과 모기가 더 찾는 것으로 밝혀졌다. 아세토페논 역시 피부 미생물이 만드는데, 건강한 사람은 RELMα라는 단백질을 만들어 이 미생물의 증식을 억제한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RELMα 유전자 활성이 떨어져 단백질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아 미생물이 증식되고 그 결과 아세토페논 냄새가 강해진다. 흥미롭게도 감염된 생쥐를 대상으로 한 동물실험 결과 비타민A를 투여하자 미생물 증식이 억제돼 아세토페논이 덜 만들어지는 것으로 밝혀졌다.
유난히 모기가 많이 꼬이는 사람 가운데 어쩌면 비타민A가 부족한 게 원인인 경우도 있을 것이다. 비타민A 또는 전구체가 풍부한 음식으로는 간, 삼치, 고등어, 고구마, 늙은호박, 케일, 당근 등이 있다. 죽 보니 다들 몸에 좋은 음식이다. 여름철 건강관리를 위해 이런 음식을 챙겨 먹으면 체취가 모기에게 덜 매력적인 체취로 바뀌는 부수적인 효과도 얻을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