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금융권에 따르면 최근 주요 시중은행들이 금리 상승기에 이례적으로 대출 금리를 낮추고 정기 예·적금 상품의 금리는 특판 등을 통해 연 3∼5%대까지 올리고 있다. 금융당국과 정치권이 금융권 이자장사에 대해 연일 '엄포'를 내놓자 은행권이 예대금리차 축소를 위해 움직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이번 주부터 신규 취급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 금리를 각 최대 0.35%포인트(p), 0.30%p 내리기로 했다.
동시에 금리 상승기에 커진 이자 부담 등을 고려해 '취약 차주(대출자) 프로그램'도 가동한다.
연 5%가 넘는 금리로 주택담보대출을 이용하는 차주의 금리를 1년간 연 5%로 일괄 인하하고 5% 초과분은 은행이 대신 감당한다. 예컨대 현재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5.6%인 경우 5%는 차주가 부담하고, 0.6%는 신한은행이 지원한다.
금리상한형 주택담보대출(연간 금리 상승폭 0.75%포인트 이내로 제한한 상품)을 신청하는 대출자에게는 원래 고객이 부담하는 연 0.2%포인트의 가산금리를 신한은행이 1년간 내주기로 했다.
'연소득 4000만 원 이하, 전세보증금 3억 원 이하'의 조건을 갖춘 전세자금대출자를 대상으로 금융채 2년물 금리를 기준으로 삼는 전세자금대출 상품도 출시한다. 일반적으로 전세자금대출은 6개월 또는 1년 단위 변동금리 상품인데, 사실상 2년 단위 고정금리 상품을 내놔 금리 상승에 따른 위험을 줄여주자는 취지다.
신한은행은 이와 함께 대표적 서민 지원 금융상품인 '새희망홀씨' 대출의 신규 금리도 연 0.5%p 인하할 예정이다.
하나은행도 취약 차주를 대상으로 금리 인하, 분할상환 유예 등 다양한 금융비용 절감 방안을 검토 중이다.
NH농협은행은 이달 1일부터 우대금리 확대 등을 통해 담보, 전세자금 등 주택관련대출 금리를 0.1∼0.2%p 낮췄다.
우리은행도 지난달 24일부터 은행채 5년물 기준 고정금리 대출에 적용하던 1.3%포인트의 우대금리(은행 자체 신용등급 7등급 이내)를 모든 등급(8∼10등급 추가)에 일괄적으로 주기로 했다. 케이뱅크도 같은 달 22일 대출금리를 최대 연 0.41%포인트 인하했다.
시중은행들은 대출금리 인하와 함께 예·적금 금리는 인상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지난 1일 '창업 40주년'을 맞아 특판 상품인 '신한 40주년 페스타 적금'과 '신한 S드림 정기예금'을 출시했다. 10만 계좌 한도로 출시된 상품으로 만기 10개월 자유 적금이다. 월 최대 30만 원까지 납입할 수 있고 최고 금리가 연 4.0%에 이른다.
1년제 정기 예금인 S드림 정기예금의 최고 금리(연 3.2%)도 3%를 넘고, 최대 가입 가능액은 1억 원이다.
NH농협은행도 오는 11일께 우대금리 0.4%포인트(p)를 포함해 금리가 연 3%대인 정기예금 신상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지난달 22일 우리은행은 최고 금리가 연 3.20%인 '2022 우리 특판 정기예금'을 2조 원 한도로 내놨는데, 불과 6일 만에 소진돼 같은 달 28일 한도를 두 배인 1조2000억 원으로 늘렸다.
같은 달 17일 케이뱅크가 출시한 연 5.0% 금리의 '코드K 자유적금' 10만 계좌도 10일 만에 모두 팔렸다.
은행들이 대출금리는 낮추고 예·적금 금리를 높이는 배경에는 당국과 정치권의 경고와 무관하지 않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0일 은행장들과의 간담회에서 "금리는 시장에서 자율적으로 결정되고 있지만, 금리 상승기에는 예대금리차가 확대되는 경향이 있어 은행의 지나친 이익 추구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같은달 28일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의장도 민생물가안정특위 회의에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0.5%포인트만 올려도 대출이자 부담이 6조7000억 원 이상 늘어난다고 한다"며 "금융기관들이 예대마진에 대한 쏠림 현상이 없도록 자율적으로 참여해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한다"고 힘을 보탰다.
한편, 한국은행에 따르면 5월 기준 예금은행의 대출 잔액 기준 총수신(예금) 금리는 1.08%, 총대출 금리는 3.45%로 예대마진은 2.37%포인트 수준이다. 이는 2014년 10월(2.39%포인트) 이후 7년 7개월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벌어진 수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