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실 풍경] 내가 나를 공격하는 자가면역질환

입력 2022-06-21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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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69년 전 대전국군통합병원. “다친 눈을 제거하면 나머지 눈은 괜찮고, 안 그러면 나중에 후유증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잘 생각해서 결정하라.” 안과 군의관이 철의 삼각지 전투에서 눈을 다친 20세 유 병장, 아니 내 아버지에게 한 말이다. “잘만 보이는데 무슨 말씀입니까. 멀쩡한 몸으로 왔다가 병신이 돼 돌아갈 수 없습니다.” 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제대 후 아무렇지도 않던 아버지의 눈은 시나브로 나빠졌고 결국 시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불행하게도 군의관 말이 맞았다. 아버지의 병은 면역시스템이 다친 눈 조직을 자기 몸이 아닌 다른 물질로 인식해 계속 공격을 하고, 공격을 받은 눈 조직이 염증 반응을 일으키고, 이 염증 반응이 심해지면서 시신경마저 죽게 하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었다.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으로는 루푸스, 류머티즘성 질환, 건선, 갑상선염 등이 있고 원인은 불명확하다. 유전적인 소인이 중요하며 기타 잘못된 생활습관, 영양 불균형, 환경문제, 감염, 약물복용, 흡연, 음주, 외상 등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치료방법은 마땅치 않다. 면역조절제를 꾸준하게 써야 할 수도 있다. 면역시스템이 관여한다는 점에서 알레르기질환과 비슷하나, 알레르기질환은 외부 물질에 대한 반응인 반면, 자가면역질환은 자기 몸에 대한 반응이다. 알레르기질환은 외부 물질을 통제하면 치료가 되지만 자가면역질환은 그럴 수 없기에 치료가 더 어렵고 경과도 훨씬 안 좋다.

내 면역시스템이 나를 공격하는 병이 자가면역질환이면, 내 마음이 나를 공격하여 자기 스스로를 헝클어 놓는 것은 무슨 병일까. 가족 간에, 다양한 사적 내지는 공적인 모임 안에서, 더 크게는 나라가 갈라져 서로 공격을 해대는 것은 또 무슨 병일까. 역사적으로 나라가 망하는 것은 외부의 적이 아니라 내분 때문이라 하지 않던가. 당장 우크라이나 전쟁도 돈바스 지역의 내분이 빌미였다. 의사로서 이 모든 현상을 자가면역질환으로 진단하고 싶다. 유인철 안산유소아청소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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