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기업이 투자하고 싶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취임 후엔 기업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서는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하고 뛰기 어렵다고 했다. 최근 한덕수 국무총리와의 첫 주례회동에선 “규제 개혁이 곧 국가 성장”이라며 규제혁신전략회의를 조속히 가동하라고 지시했다.
기업들은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로 분위기를 띄웠다. 삼성그룹, SK그룹, 현대차그룹, LG그룹, 롯데그룹, 포스코그룹, 한화그룹 등 10대 그룹은 윤 정부 5년간 1000조 원이 넘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투자한다. 같은 기간 신규 채용 계획은 38만 명에 달한다.
기업들은 새 정부와 합을 맞추면서 산업안전, 노동, 세제 등 각종 규제에 대한 개혁을 건의했다. 대표적인 규제로는 중대재해처벌법(중처법)이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상시근로자 50인 이상 기업 367곳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81.2%가 중처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들은 사고 발생 시 책임 범위가 모호해 경영자에게 과도한 형사 책임을 묻는 것을 가장 시급한 개선 과제로 꼽았다.
중처법은 올해 초 시행 이전부터 논란이 됐다. 사고 예방이 아닌 처벌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실효성에 줄곧 의문이 제기됐다. 고용노동부 집계 결과 중처법 시행 후인 올 1분기 산업현장 근로자 사망사고 건수가 작년보다 늘어난 것으로 나타나면서 개정 요구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노동 개혁 중에는 노사 간 힘의 균형을 맞춰 달라는 요구가 많다. 노동쟁의 시 사업장 점거 금지, 파업 시 대체근로 불가 등을 개선해 달라는 취지다.
법인세 인하, 연구개발·시설투자 세액공제 확대 등 세제 개편도 기업들에 중요하다. 한국의 최고 법인세율(25%)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21.5%)보다 높다. 새 정부가 기를 쓰고 밀고 있는 반도체의 경우 시설투자의 경우 세액공제율이 6%(대기업 기준)에 불과하다. 미국, EU(유럽연합) 등 경쟁국들은 20%가 넘는 세액공제와 시설투자액의 최대 절반까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보잘것없는 수준이다. 반도체 개발을 주도할 석·박사급 인재 양성도 정부가 의지를 갖고 추진해야 할 과제다. 대학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는 수도권 쏠림 현상 등 부작용이 큰 만큼 면밀한 검토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겠지만 가야 할 길이다.
다만 새 정부의 규제개혁 방안의 성공 여부는 입법부인 국회의 초당적 협력이 반드시 뒷받침돼야 한다. 각종 규제 개혁은 관련 법 개정을 통해 가능하다. 여소야대 국면에서 가시밭길이 우려된다.
과거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전봇대’에 비유하며 뽑아버리겠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라며 이를 제거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하지만 정쟁과 이권 다툼, 이해관계가 얽혀 시간이 지날수록 흐지부지해지더니 결국 눈에 띄는 성과는 없었다. 윤 정부가 ‘모래주머니’를 얼마나 걷어낼지 지켜볼 일이다. 과거 정부의 실패를 교훈 삼아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규제 혁파를 이뤄내야 한다. 우리 기업들의 경쟁 상대는 글로벌 기업이다. 여러 규제에 발목 잡힌 우리 기업들에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글로벌 기업들과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