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국가의 일자리 정책이 고용→실업→사회보장 정책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일자리 보장제는 실업 다음에 일자리 보장이 하나 더 들어간 형태로 국가 또는 지방정부가 양질의 일자리를 보장해주는 정책이다. 이러한 주장은 우리 헌법 제32조 1항의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는 문구에 기반을 두고 있다. 그러나 경제체제 관점에서 보면 2008년 이후 양적완화와 코로나로 인한 현금성 생활 안정자금이 막대하게 풀리면서 화폐발권이 인플레이션을 조장하지 않는다는 현대화폐이론이 재조명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2008년과 최근 팬데믹 상황에서 풀린 화폐가 금융이나 기업, 자산가들에게 유입된 양적완화 정책이었다면 일자리 보장을 위한 화폐발행은 노동자 계층을 위한 일종의 양적완화인 셈이다.
화폐라는 것이 이론상 신용과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통화주의자들이 말하는 인플레이션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역사적 선례를 찾기 어려우며, 일자리 보장제는 화폐의 문제보다 다른 차원의 이유 때문에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물론 고용과 산업이 안정적으로 운영되다가 갑자기 전쟁이나 급격한 경기 하락이 발생했지만 향후 경기 반등이 과거와 동일한 수준으로 확실히 예상되는 경우 일시적인 일자리 보장제가 효과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같은 만성 과잉인력, 산업독점과 산업 공동화 상황에서는 아래와 같은 이유 때문에 긍정적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첫째, 일자리 보장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말하는, 민간과 충돌하지 않으면서 민간의 저임금 일자리보다 임금을 더 주는 일자리의 존재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이다. 둘째, 일자리 보장제가 경기 위기 시에는 공공의 일자리에 머무르다가 경기 회복 후 더 나은 민간 일자리로 이동하도록 지원한다는 사회안정화 기능 또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우리나라에서 실업 후 재취업 훈련을 받은 사람이 새롭게 취업한 직장의 임금이 전 직장에 비해 하락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일자리 보장제 아래에서 과거의 고용상태보다 더 좋은 일자리로의 이동은 확률적으로 매우 낮다. 셋째, 일자리 보장제가 민간 부문 일자리의 질을 끌어올릴 거라는 논리가 현실적으로 가능하려면 현재 낮은 고용의 질을 가진 민간 일자리가 사실은 고용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 하지만 실제 중소기업에 이런 곳은 거의 없다. 넷째, 일자리 보장제의 주요 대상인 환경, 돌봄, 건설, 토목,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기획력, 생산성의 문제로 일의 지속성을 담보하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다. 다섯째, 일자리 보장제에서 나온 재실업자는 결국 기존의 사회보장 혜택을 걱정해야 하는 문제로 다시 환원된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로 인해 일자리 보장제를 강력히 주장하는 미국의 파블리나 체르네바(Pavlina R. Tcherneva)는 참여소득과의 연계를 제안하고 있다. 이러한 제안은 참여소득이 아직 미완의 이론임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보장제의 문제를 참여소득의 특성인 사회 기여성과 참여소득 프로그램으로 해결하고자 하는 의도로 보인다. 그러나 참여소득의 성공은 지역분권화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지역 내에서 참여소득으로 볼 수 있는 다양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을 하나의 사회정책으로 끌어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일자리 보장제, 참여소득 모두 지역 분권화를 기반으로 한 지역의 다양한 일자리에 대한 요구를 지지해 줄 지역 내 정치 활성화가 공통의 숙제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