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진전으로 인한 분업화로 공급망 혼란 가능성이 높아지고, 디지털 전환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녹색 전환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환경 변화를 빠르게 인식한 국가들을 중심으로 미국·EU 무역·기술위원회(US-EU TTC), IPEF 등 새로운 대응을 준비할 때, 기존의 패러다임에 갇혀 사고하고 있는 것은 누구인가. 전통적으로 정치외교와 경제를 분리해서 사고하지 않는 중국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르지만, 최근 몇 년간 중국의 모습은 세계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을 앞두고 우리 정부의 IPEF 가입에 대해 중국은 “신냉전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간 중국은 미국과의 각종 회담에서도 “냉전적 사고를 버려야 한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해 왔다. 이에 대해 미국 정부는 공식적으로 미·중 관계를 “냉전” 또는 “신냉전”으로 묘사한 적이 없다. 대표적으로 바이든 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3C(Cooperation, Competition, Confrontation)로 묘사된다. 협력할 부분에 있어서는 협력하고, 경쟁해야 하는 부분에서는 공정한 경쟁을, 그리고 양보할 수 없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대립도 불사하겠지만, 제로섬 게임이 아닌 중국과의 공존(co-existence)을 전제로 하겠다는 것이다. 필자에게 냉전적 사고를 하고 있는 것은 정작 중국으로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IPEF 가입으로 인한 중국의 경제보복 가능성에 대해 일부 우려하는 시각이 국내에 존재한다. 그러나 필자는 그 가능성이 낮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수단의 한계다. 2017년 사드 사태 이후 중국은 관광객 한국 여행 제한, 한류 콘텐츠 수입 금지, 화장품을 포함한 소비재 수입규제 강화 등을 활용하여 경제보복을 취했다. 그런데 5년이 지난 현재도 한국이 입은 타격은 중국정부 정책, 중화민족주의,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회복되지 못한 상태다. 따라서 또다시 중국이 경제보복을 취한다면 원자재나 중간재 관련 제재가 될 가능성이 있으나, 이는 중국에도 큰 경제적 피해를 유발할 것이기 때문에 보복 수단의 한계를 지닌다.
둘째, 한·중 교역 구조의 변화다. 한·중 간 교역구조는 그동안 중간재-중간재 교역 중심으로 발전해왔다. 2021년 우리나라 대중국 수출품의 80%, 대중국 수입품의 64%가 중간재였다. 이렇듯 양국 간 산업구조가 고도로 분업화된 상황에서 섣불리 중국이 경제 공세를 펼칠 경우, 중국도 공급망 교란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크다. 예를 들어, 중국이 의도적으로 요소 수출을 제한할 경우 한국 내 물류 교란을 야기할 가능성은 크지만, 이는 한국의 대중국 수출용 중간재 생산 및 운송에도 지장을 초래하며 중국도 궁극적으로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큰 것이다.
셋째는 미·중 갈등의 첨예화다. 사드 사태가 발생했던 2016~2017년과 달리 2022년 지금 우리는 첨예한 미·중 간 갈등을 목격하고 있다. 따라서 현재 미국이 주도하는 IPEF 가입을 이유로 중국이 경제보복을 가한다면, 과거와 달리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을 어떤 형식으로든 적극 지원하며 한·미 관계가 중국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경쟁에 있어 장기전을 노리는 중국도 시간을 벌기 위해서는 상호의존도가 높은 한국과 같은 나라를 당장 자극해서 얻을 것이 없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 국내정치 일정도 고려 사항이다. 10월 시진핑 주석의 3연임이 예상되는 가운데 중국의 2022년 핵심 키워드는 국내외 정세 안정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 나아가 IPEF 가입국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경제보복 조치는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IPEF는 신통상 의제를 다루기 위해 국제 규범과 가치를 기반으로 한 개방적이고 투명한 플랫폼을 지향한다. IPEF는 국제 규범을 따르지 않는 국가들의 배제가 아닌 상호의존 속에서 그들이 유발하는 리스크를 관리하고, 새로운 시대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며, 역내 국가들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려는 미래지향적인 노력이다. 글로벌 패러다임의 변화에 맞춰 새로운 준비를 하는 국가들을 되돌리려 하기보다 중국 스스로가 변화해야 할 시간이 아닐까. 미래 한·중 관계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러한 노력에 중국이 동참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