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정권이 교체된 이후 독일은 첫 주요 선거를 치르고 있다. 현재 독일에서는 주정부의 지방선거가 진행되고 있다. 독일 내 가장 많은 인구를 보유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서 지난 일요일 실시된 예비투표에서 야당으로 밀려난 기민당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하였다. 정치적으로 큰 울림을 보이고 있는 독일의 지방선거 양상은 몇 가지 뚜렷한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유럽과 다수의 주요국에서 나타나고 있는 정치적 스펙트럼의 양 극단 포퓰리즘 정당의 입지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웃나라 프랑스에서 지난달 치러진 대선에서도 비록 마크롱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했으나, 자극적이고 배타적인 국가이익을 추구하는 극우, 극좌의 지지율 확산이 확인된 바 있다. 하지만 독일 내 극우인 독일대안당(AfD)과 극좌인 좌파당(Die Linke)은 지지율이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독일 사회의 분위기는 원래부터 편견과 혐오의 표현을 지양하고 연대의 사회적 가치를 지지하는 성향으로, 정치적 갈등을 노골화하는 정당의 득세가 어려운 편이기도 하다. 게다가 양당은 4월 말 독일 연방하원에서 우크라이나에 중화기를 보내는 데 대한 반대투표를 던진 정당이었다. 기존 독일의 지방정부 선거는 해당 주의 교통편의, 교육정책, 지방산업의 발전방향 등 정책 우선 선거가 지향되었으나, 전쟁이라는 압도적 위기 시기에 대외정책에 대한 정당의 입장이 지방선거에도 큰 반향을 일으킨 것이다.
둘째,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선거에서 1위를 탈환한 기민당보다 더 승리한 측으로 평가받고 있는 정당은 녹색당이다. 녹색당은 무려 11.8%의 지지를 획득하며 연립정부 내 존재감을 드높였다. 프랑스의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좌파의 정치적 입지가 좁아지고, 기존 지지세력인 노동자가 떠나가는 이유를 고학력 엘리트들인 ‘브라만(인도 카스트 제도의 최고위 계급) 좌파’가 환경, 불평등 등 당장 먹고사는 문제와 거리가 먼 주제들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라 분석한 바 있다. 독일의 녹색당 선전은 이러한 세계적 분위기에서 유독 눈에 띄는 대목이다.
셋째, 앞서 포퓰리즘 정당에 대한 평가가 대외 위기라는 변수에 영향을 받은 것과 같이 숄츠 총리 또한 위기관리 능력을 평가받고 있다. 지난해 기민/기사 연합(CDU/CSU)을 제치고 제1당이 된 사민당(SPD)은 사민-녹색-자민 3당의 소위 ‘신호등 연정’을 구성해내며 포스트 메르켈 시대의 포문을 열었다. 하지만 출범 직후 숄츠 총리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라는 압도적 안보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위기 발발 초기에는 다양한 국내 이슈를 압도하는 대외 문제 발생으로 이를 해결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지도자에 대한 지지가 높았으나, 러시아의 침공이 장기화되는 상황에서 숄츠 총리는 ‘압도적 위기 국면에 갇힌 리더’의 전형을 보이고 있다. 외신과 전문가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한 무기 지원이나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금수 조치를 적절한 시기에 결단력 있게 행하지 못한 집권당에 대한 평가가 지방선거에 반영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숄츠 총리는 다른 이슈로 전환되기 쉽지 않은 위기 국면에서 제대로 된 리더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의미에서 ‘투명인간(invisible man)’이란 닉네임을 얻으며 자신의 정치 역량에 대한 불편한 시선을 받고 있다. 숄츠 총리의 리더십은 불안정한 국제무대에서 4명의 미국 대통령을 상대하며, 중국 및 러시아와의 균형을 잃지 않았던 메르켈의 정치 스타일과 자못 비교된다. ‘메르켈른’이 긴 기간에 걸쳐 부정적 의미에서 긍정적 의미로 재해석되었던 것처럼, 숄츠 총리의 ‘투명인간’도 강한 목소리를 내지 않지만 은은한 영향력을 미치는 정치력으로 재평가될 수 있을지 기로에 서 있다.